이고양의 독서모임 이야기
* [For me]는 이고양이 직접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경험하고 또 배워나간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글입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통해 독서의 즐거움과 독서모임의 매력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 [For me]는 매주 금요일마다 에피소드 하나씩을 올리려 합니다. 이따금씩 쉬어가는 주가 생길 수도 있지만, 가능한 꾸준히 올리려 노력하겠습니다.
트렌치코트가 잘 어울리는 4월 말의 어느 따스한 봄날. 기분 좋은 날씨 탓인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돗자리를 펴고 봄나들이를 즐기고 있는 오후의 수목원. 그 수목원 바로 옆에 있는 예술의 전당에서 For me의 첫 비공식 '책이 아닌 모임'이 있었다. 책 대신 연극을 보고, 책을 읽은 것과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그날의 멤버는 운영진이었던 나와 여우님, 그리고 지금은 둘 다 운영진이지만 그 당시에는 회원이었던 토끼님과 기린님이었다. 연극은 살짝 기대에 못 미쳤지만, 대화는 기대보다 더 즐거웠다.
그날의 모임이 계기였을까. 아니면 봄날의 마법이 우리를 밖으로 불러낸 걸까. 그 모임을 기점으로 5월을 지나 6월이 넘어가는 시기까지도 '책이 아닌 모임'을 공식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열기 시작했다.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산책벙.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영화벙. 봄날의 나들이를 즐기는 나들이벙. 탁구도 치고 노래방도 갔던 그냥 노는 벙. 보드게임을 했던 보드게임 벙. 서점을 찾아가는 서점탐방벙. 치킨은 언제나 옳으므로 치킨벙.
그중에는 연극이나 영화처럼 책을 대체하는 다른 소재를 통해 대화를 하는 모임도 있었지만, 어떤 때는 그런 것도 없이 마냥 즐겁게 놀기 위한 날도 있었다. 물론 이미 대화에 중독되어버린 For me 회원들은 그냥 노는 벙에서도 대화를 빼놓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책이 없는 컨텐츠들을 진행하면서 아주 상반된 두 가지를 느꼈다. 하나는 '책이 없어도 정말 즐겁게 놀고 대화할 수 있구나'. 그리고 또 하나는 '역시 독서벙이 제일 재밌어'였다.
사실 이런 책이 없는 컨텐츠들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자칫 모임의 성격이 변질되어버리면 어떡하지? 회원들 중에 노는 벙에만 참석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지? 또 내보내야 하는가? 그러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책이 없는 컨텐츠보다 훨씬 많은 횟수로 독서벙과 정모 같은 독서 컨텐츠들이 열렸으며,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 것도 독서 컨텐츠였다. 놀기에 바빠서 독서 컨텐츠에 소홀해지는 운영진도 회원도 없었다. 그 걱정이 사라지고 나니 '책이 없는 컨텐츠'의 장점이 확실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책이 없는 컨텐츠'의 가장 큰 장점은 친밀감의 형성이다. 책을 통해서 충분히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책을 벗어나 함께 활동을 하고 책을 벗어난 대화를 하는 것은 서로 간의 거리감을 더욱더 좁히게 되는 계기가 된다. 때로는 책이 없기에 더 개인적이고 친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고, 상대방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다시 책으로 돌아왔을 때, 훨씬 더 깊고 즐거운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책을 통해 이루어졌던 이해는 책을 벗어나며 확장되었고 다시 책으로 돌아오며 깊어지게 된다.
원래 독서모임이 다 그런 것인지, 아니면 유독 내가 좋은 회원들을 많이 만난 것인지. 책이 없는 컨텐츠에 참여하시는 분들도 모두 중심은 독서와 대화에 있었다. 책이 없는 컨텐츠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그보다 더 많은 횟수를 독서 컨텐츠에 참여하셨고, 자주 참석하지 못하시는 분들의 경우에는 책이 없는 컨텐츠보다는 독서 컨텐츠에 참여하는 편이었다. 그 중심이 독서와 대화에 있었기에 책이 없는 컨텐츠도 오히려 더 즐거운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노는 것보다도 책을 읽는 시간이 더 인기 있는 독서 모임이라니. 이 얼마나 멋진 독서모임인가.
코로나의 여파만 아니었다면 더 적극적으로 책이 없는 컨텐츠를 활성화시켰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더위와 코로나의 습격으로 인해 다시금 독서 컨텐츠 위주의 활동으로 돌아가 버렸다. 참고로 이 글을 작성하는 시기는 또다시 5월. 봄날의 마법이 다시 찾아오는 시기이다. 이미 올해의 봄나들이 모임도 한차례 있었고, 다시금 책이 없는 컨텐츠가 활발해지려나 하는 기대감도 살짝 생겨나버렸다. 아니 사실 책이 없는 컨텐츠를 통해 독서 컨텐츠가 훨씬 더 활발해질 것을 기대하는 중이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For me는 처음부터 책이 중요하지 않은, 책에서 벗어난 대화를 추구하는 모임이었고, 그렇기에 진짜 책이 없는 컨텐츠를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끝에는 결국 다시 책으로 돌아오게 된다. 아니 책이 없어도 즐거웠으나 그 즐거움과 비례하여 책에 대한 갈망이 더 크게 피어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독서모임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독서에 대한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찾아온 이들이다. 그렇기에 독서는, 그리고 대화는, 가장 즐거운 행동일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도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즐겁다. 나는 산책도 좋아하고, 노래방도 좋아하고, 연극과 영화도 좋아하고, 탁구와 볼링도 좋아하고, 보드게임도 좋아하고, 치맥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좋아하는 것들을 하는 시간보다도, 책을 읽고,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때로는 그 생각이 부딪히고, 이따금은 그들에게 영향을 받기까지 하는. 그런 시간이 For me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이것만큼은 For me에서 가장 제대로 맛볼 수 있는 For me의 특산품이니까 말이다.
때로는 책 없이도 즐거운 모임. 그러나 책이 있을 때 가장 즐거운 모임. 이래서 내가 For me를 참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