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강신주) / 22-13
오롯이 좌절하고 싶은 마음.
오롯이 나로서 살아가려는 마음.
독서리뷰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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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드라마에서 정말 마음을 울리는 대사를 만났다. ENA에서 방영 중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우영우가 아버지에게 내뱉은 대사다.
'오롯이 좌절하고 싶습니다.
좌절해야 한다면 저 혼자서 오롯이 좌절하고 싶습니다.
저는 어른이잖아요.
아버지가 매번 이렇게 제 삶에 끼어들어서 좌절까지도 대신 막아주는 거 싫습니다.
하지 마세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임이기에 아버지는 모든 것이 신경 쓰이고 힘들지 않게 보호해 주고 싶지만, 주인공인 영우는 자주 표현하곤 한다. '어른이니까'라는 말을.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인정받고 싶고, 홀로 서고 싶은 영우의 마음은 극 중에서도 자주 나타나지만, 이 대사에서 가장 크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최근 이 책을 읽고 있어서일까? 저 대사를 듣자 마자 요즘 한창 자주 읽고 있던 이 책이 생각났다.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이 책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주제를 찾는다면 아마 이 문장으로 뽑아낼 수 있을 것 같다. '나만의 삶을 오롯이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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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고 삶을 살아갈 수록 절실히 느끼는 것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참 어렵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떠한 삶이 어른의 삶일까. 어쩌면 이 질문에 명쾌한 해답을 내리고 누군가에게 가르칠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어른'이라 불리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니기에 그런 명쾌한 대답은 없지만, '어른'이라 불리기 위한 '최소 조건' 정도는 몇 가지 알고 있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는 자립된 삶을 사는 사람' 그리고 이번에 알게 된 것은 '자신의 삶을 오롯이 자신이 감당하는 사람'이다. 선택도 그 대가도, 성공의 과실도, 실패의 쓴 열매도 모두 오롯이 감당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어른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영우의 대사는 사실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화두나 다름없다. 나는 오롯이 좌절하고 있는가? 오롯이 행복하고 있는가? 오롯이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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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 모자람이 없이 온전하게, 남고 처짐이 없이 고스란히
오롯이 살아간다는 것은, 모자라지도, 남거나 처지는 것도 없이, 온전히 나의 선택과 나의 마음으로 가득 채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헷갈려서는 안 되는 것은 '오롯이'와 '오로지'의 차이다. '오로지'는 '다른 것 없이 오직 하나만'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즉 오롯이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잃어버리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것이고, 오로지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만이 존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매우 다른 삶인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으며,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오롯이 나로 살아가는 것'과 '오로지 나로 살아가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때때로 이기적이고, 때때로 부도덕하며, 때때로 독단적으로 살아간다. 그러한 삶이 마치 '나'를 위한 삶인 것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하지만 '오로지 나만이 존재하는 삶'은 진정으로 나를 위한 삶일 수 없다. 우리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타인과 함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기에 우리는 나만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 없다. 그렇다고 타인으로만 가득 찬 삶을 살아가는 것 또한 나를 위한 삶이 아니다. 내가 없이 타인의 기준대로만 살아가는 삶 또한 삶이라 부를 수 없기는 매한가지이다.
그 해답이 '오롯이'라는 단어에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나라는 사람의 고유성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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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잃지 않는다는 것, 혹은 나만의 삶을 찾는다는 것.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질문들이 바로 이 책 속에 있다.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사실 내용만으로는 제목을 유추하기가 힘든 책이다. 이 책의 진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무문관' 이라는 책을 이해해야 한다. 무문관은 불교에서 옛 스님들의 화두를 모아놓은 책이다.
'무문관'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책을 읽지 않아도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무문관' 영어로는 'The gateless gate'. 즉 문이 없는 관문이며, 정답이 없는 문제다. 정답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삶의 문제이며, 자신의 길을 찾아낸 자는 곧 그 길이 정답이 되어 걸어가게 되는 것. 그 것이 바로 '무문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들이다.
재밌는 것은, 이미 다른 사람이 찾아낸 답은 결코 나의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답은 그 사람의 것이기에, 나의 정답은 새로이 내가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답에 기대지 않은 채 나만의 답을 찾는 것. 그야말로 '나만의 삶을 오롯이 살아가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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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시기에 함께 보게 된 한 권의 책과 한 편의 드라마. 이 두 가지가 적절히 어우러져 나에게 '온전한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져주었다.
이 질문에 나는 어떤 대답을 내어놓게 될까? 이 대답만큼은 이 글에 적을 수는 없다. 이제 내 앞으로 놓인 인생의 긴 시간 동안 나는 그 답을 보이는 삶을 살아가는 것 뿐이다. 나의 대답은 내가 준비할 것이다. 여러분의 대답 또한 여러분이 직접 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