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고 쓰는 일기 [23.07.03 Mon]
내가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인 홍토끼님을 만나게 된 계기는 독서였다.
둘 다 책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책을 통해 만나, 책을 통해 대화를 나누고, 책을 통해 서로 호감을 쌓아나갔다.
그만큼 우리 사이에 독서가 가지는 의미는 매우 깊다.
그런데 최근 문득 인지하게 된 사실은
홍토끼님은 여전히 책을 사랑하고, 많은 시간을 책과 함께 보내는 반면
나는 독서량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정막 책 읽을 시간조차 없을 만큼 바빴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겨우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나도 알고
홍토끼님도 알고
이 일기를 읽는 독자님들 마저도 알 것이다.
어쩌다 내가 책과 이렇게 멀어지게 된 거지?
읽으려고 샀는데 아직도 못 읽은 책이 이렇게나 많았던 적이 있었던가?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를 솔직하게 걷어내고 나서 보니
내가 책을 멀리하게 된 이유가 어렴풋이 보였다.
요즘은 책을 읽어도 재밌지가 않았다.
뭐가 달라진 걸까?
나도 몰랐던 문제의 해답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사람이 쥐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홍토끼님이 자신도 모르게 해답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언제나 의도치 않게 해답을 건네주는 홍토끼님에게 감사합니다 ㅎㅎ)
내가 책을 대하는 자세가 어느샌가 어긋나 버렸다.
언제나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와도 관계없이,
오롯이 내가 스스로 의미를 찾고 책을 통해 생각을 쌓아나가는 독서가 나의 즐거움이었는데
최근에는 자꾸 작가의 메시지에 정면으로 부딪힌다.
작가의 특정 생각이나 전체적인 흐름이 마음에 안 들면, 아무리 좋은 문장도 눈에 들어오지를 않는 것이다.
예전에도 책에게 딴지는 많이 걸었지만, 그건 나 자신의 생각을 발돋움하기 위한 논쟁이었고, 성장의 발판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냥 시비를 걸기 위한 딴지, 작가가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한 논쟁을 할 뿐이었다.
그러니 책이 읽히지 않지.
그러니 독서가 재미가 없지.
초심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야 한다고 하고, 되찾아야 한다고 하는 바로 그 초심.
이번엔 내가 그걸 찾아봐야 할 때인가 보다.
문제의 해결은 언제나 정면돌파에 있다.
자세를 바로잡고 책을 읽는 건 늦다.
일단 읽는다. 그러면서 바로잡는다.
그래서 홍토끼님에게 과감하게 약속을 했다.
(홍토끼님이 요구한 게 아니다. 안 그래도 된다고 하는데도 내가 억지로 걸었다.)
이번 달 안에 4권의 책을 읽겠노라고.
모드 퀼리엥의 '완벽한 아이'
그렉 이건의 '쿼런틴'
조 메노스키의 '킹세종'
김혜원의 '나를 리뷰하는 법
4권 모두 홍토끼님이 사주었거나 빌려준 책들이다.
이 책들은 좀 더 읽을 동기부여가 되겠지.
무언가 쉽지 않은 도전을 할 때에는 사랑의 힘을 빌리는 게 나만의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