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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Apr 05. 2020

엄마의 생일과 토토로

두번째 이야기, 2020년 4월 4일 토요일. 날씨 바람(강)

어릴 적 드라마에선 남편이 아내의 생일을 깜빡 잊고 있다가 혼쭐이 나는 장면이 꽤 흔한 편이었다. 당시 결혼기념일을 챙기는 남편은 아내에게 잡혀 사는 남자 정도로 치부되기도 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여전히 제 생일은 알아도 아내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은 꽤 기억하기 어려운 날이다. 결혼하고 아내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잊은 적은 없지만, 생각보다 늦게 알아챈 적은 꽤 있었던 것 같다. 올해도 그러한데, 아내의 생일날 회식이 잡혔다가 취소됐음에도 그날이 어떤 날인지 몰랐고 회식이 취소됐다며 친구들과 술약속을 잡기도 했다. 술약속을 잡고 캘린더에 그 소중한 술약속을 적어놓던 차, 매해 반복 설정해놓은 생일 표시를 발견하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눈 앞에 호랑이가 나타났는데, 호랑이가 내게 큰 관심이 없어 빤히 바라보다 어슬렁어슬렁 지나간 것 같았다. 


엄마의 생일과 토토로

봄아, 네가 12월에 세상에 처음 나와 울음을 터트렸을 때처럼 엄마와 아빠도 낯선 세상에서 눈을 떴을 때가 있었어. 너는 크리스마스를 몇일 앞둔 성탄전야에 태어났다면, 엄마는 벚꽃이 완연해 세상이 분홍빛 백색으로 물들었을 때 태어났다더구나.


한해가 지나고 생일이 돌아오면 우리는 제 나이를 꼽아보면서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너는 어떨 지 모르겠구나. 아빠는 어릴 땐 하루가 너무 길어 그 하루가 삼백육십오일이 지나야 생일이 다시 찾아온단 사실이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아. 지금 아빠의 시간은 그때보다 열배 백배는 빠른 것 같은데, 지금은 쏜살같이 찾아오는 생일이 덜컥 겁이 나기도 해.


네가 보고 듣고 맛보지 못한 계절들이 지나가면 네 생일도 다가올 텐데, 우리는 매일매일을 감사하며 그 생일을 기다려보기로 하자.


아. 많은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자신의 생일이 다가오길 손에 꼽곤 하는데, 아마도 그건 생일 선물 때문일거야. 엄마도 아빠도 생일이 다가오면 어떤 선물을 받을 지 기대했던 날들이 많았는데, 사실 지금은 어떤 선물을 받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어떤 날 아빠의 아빠, 봄이의 할아버지가 아마도 생일 날 자전거를 사오신 적이 있었는데, 내가 원하던 자전거가 아니어서 울음을 터트렸던 기억은 아직 있구나.


곧 엄마의 생일이야. 엄마의 생일은 아빠뿐 아니라 너도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날이라는 걸 네가 조금만 크면 알게될거야. 아빠는 오늘 엄마의 생일선물을 사기 위해 오랜만에 자동차를 운전해서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어. 엄마와 아빠는 결혼하고 언젠가부터 이웃집 토토로가 그려진 접시와 잔을 모으고 있는데, 사계절을 잘 드러내는 꽃과 나무, 곡식들이 토토로의 여러 캐릭터와 어우러져 있단다. 32년 전 만들어진 이 애니메이션이 네게도 즐겁고 신기한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어. 아빠는 그릇이 고르다가 문득 네가 이웃집 토토로를 보고 집에 있는 접시를 발견해 즐거워할 모습이 상상되기도 하더라. 오후 4시 30분쯤 기우는 햇빛에 비친 먼지 입자들이 반짝거릴 때처럼 아빠 기분이 조금 싱숭싱숭하기도 하더라. ♣

접시는 비싸다. 그런데 오늘 내가 지른 닌텐도 카트리지 '동물의 숲'보단 싸다. 비싸다 싸다 느끼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

이번주 봄이는

+110days. 뒤집을려고 허리를 활처럼 휘어 용을 쓰지만, 타고난 짱구머리에 아직 뒤집기는 무리인 듯 싶다. 평일에 놀아주지 않으니 모르는 사람 취급하다가 주말에 놀아주면 웃어준다. 머리 감겨줄 땐 눈길을 외면하지만, 욕조에 앉으면 기분이 좋은지 발장구를 친다.


이번주 엄마는

맥주를 좋아하신다. 캔맥주에도 만족하던 분께서 생맥주를 찾는다. 생신을 맞으시고 꽃과 선물을 받으셔서 기분이 좋은 상태인 듯 하지만, 긴장을 늦출 순 없다. 아내는 나보다 확연하게 어려보이는데 사실 2살 연하이고 자존심이 쎄서 오빠라고 거의 한 적이 없는 분이시다.


이번 주 아빠가 읽은 문장

"피디님이 거기 가신대서 어제 유튜브로 암스테르담을 찾아봤거든요. 그러다 백남준이라는 미술가가 80년대에 한 인터뷰를 봤어요. 거기서 그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예술이 나오려면 도시가 썩어야 한다. 뉴욕이나 암스테르담처럼 완전히 썩어야 예술이 나온다. 서울은 더 썩어야 한다고요."

- 강희영, 최단경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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