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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Mar 28. 2020

아이의 100일, 아빠의 1일

첫번째 이야기, 2020년 3월 28일 토요일. 날씨 맑음

당신의 첫 기억은 언제인가요. 당신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언제인가요. 언젠가 오래전 헤어져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이가 있습니다. 너무나 어렸을 때 헤어져 얼굴도, 목소리도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그저 동사무소에서 발급해준 주민등록만이 그 사람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평범한 직장인인 저는 난생처음 아빠가 되었습니다. 먹이고, 재우고, 씻기길 반복하다 아이의 백일을 맞았습니다. 그날 밤 百이 적힌 백설기를 먹다 잊고 있던 그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 그 사람이 떠오른 건 어떤 이유였을까요. 저는 내일 일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사실과 누구나 스스로 기억할 수 없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생각이 이 책의 시작이었습니다. 아이가 절대로 기억할 수 없고, 누구도 말해줄 수 없는 시간들과 나에 대해 기록한다면. 적어도 아이는 저와 같이 컴컴한 미로를 해매지 않아도 될 것 같았거든요. 이 글이 아이에게 가장 오래된 기억을 뛰어넘는 최초의 기록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이의 100일, 아빠의 1일

봄아, 아빠가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이야기를 하려고 해. 먹고 자고 싸며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는 네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엄마와 아빠는 너와 함께 살아가며 어떤 하루, 어떤 일주일을 보내고 있는지, 말해볼까 해. 


짤막하게 내 소개를 하자면 나는 네 아빠고, 1985년에 태어나 지금의 너와 같이 먹고 자고 싸며 무럭무럭 자라나다 (중략) 지금이 되었어. 오늘로 너는 100일을 맞았고, 나는 1만2834일 맞았지. 숫자는 너와 나, 동일하게 하루씩 늘어날텐데 우리는 늘어나는 그 시간에 감사하도록 하자.


앞으로 아빠는 너와 함께 살면서 벌어지는 일이나, 생각나는 것이나, 보고 듣고 읽고 쓴 것들을 말해주려 해. 아마도 그것들이 모이고 쌓이면 아빠가 아빠를 기억하고, 네가 어린 시절 함께한 아빠를 기억할 수 있는 어떤 공간이 되겠지.


요즘은 말야, 이름도 어려운 바이러스(코로나19)가 세상에 퍼져 많은 사람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얼굴을 가리고 있어. 이제 막 백일을 맞은 너는 밖에 나갈 기회가 많지 않은데, 더더욱 밖에 나갈 기회가 적어져서 아쉬울 따름이야.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삼촌들과 외삼촌, 외숙모도 직접 보고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거의 없었어. 하지만 이전에 그랬듯 지금의 어려움도 이내 곧 나아질거야. 마스크에 가려진 가족들과 친구들의 맑은 표정이 네 눈에 차곡차곡 담기는 그날이 금방 올거야.  


봄아,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는 한 해 동안 변화하는 자연의 흐름에 따라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이라는 이름을 붙여 계절을 구분하고 있어. 네 이름도 사계절 중 하나인 봄에서 비롯된 것인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삼월 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봄이 온 것 같다'고 말하곤 해. 네가 맞을 그 계절에 누군가 봄이 온 것 같다 말한다면, 너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사람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봄이 오면 세찬 겨울 바람도 누그러져 노곤노곤 두 뺨을 스쳐 지나갈 텐데, 찰나일테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 바람이 될거야. 그 때 쯤이면 그 바람이 흰 벚꽃잎을 실어 나르고, 거리엔 노란 개나리와 분홍빛 진달래가 여기저기 활짝 필거야. 그 때는 우리가 때때로 함께 걷도록 하자. 곧게 뻗은 천길을 따라 걸으며 우리가 몰랐던 것들과 말하지 못한 것들을 이야기하자.


이번 주, 봄이는

아아, 우우, 꺄꺄 정도의 소리를 내던 봄이는 요즘 내가 한라산 중턱에서 들었던 여러 마리의 다양한 새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똑바로 누워 있다가 몸을 뒤집을 순 없지만, 엎드려 있다가 똑바로 드러 누울 순 있게 됐다.


이번 주, 엄마는

육아휴직 중인 엄마는 봄이의 백일 준비로 마음이 바빠보였다. 나는 재택근무 중인데 택배상자가 수시로 문앞에 배달되는 것을 목격했다. '택배=과잉 소비'로 인식하는 나로선 꽤나 스트레스 받는 일이었지만, 잔소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나나 잘하자.


이번 주, 아빠가 읽은 문장

여전히 큰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상관없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광대한 북알프스의 한 점이고, 작은 점에서 내는 소리 같은 건 태양 빛이 아침 안개와 함께 지워주지 않을까. 

- 미나토 가나에, 여자들의 등산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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