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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토일 Jan 07. 2024

차카게 살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쇼.

급여는 늘 월급날의 밤이 다 돼서야 입금됐다. 이름만 들으면 내로라하는 곳이기도 하고 나름 9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 기대했었는데 3개월 동안 급여일의 밤이 다 돼서야 입금을 해주는 걸 보고 촤하. 센스에 감동을 해버렸다.


2023년 12월 21일 비자발적 퇴사를 하면서 나는 권고사직 서류에 서명을 했다.

우리 집엔 가훈이 없는데 엄마는 늘 사인하면 끝이다. 는 말을 하곤 했다. 입사를 하면서 근로계약서 서명을 하며 가훈을 어겼고 4개월 동안 혹독한 시련에 녹아내리다가 권고사직 합의서라는 이름의 서류에 사인을 앞두고 있었다. 정말이지 사인하면 끝이다.


세 가지의 항목을 명시해 놨는데

첫 번째는 11월 6일부터 12월 21일까지의 총급여를 1월 6일 입금한다는 항목

두 번째는 비자발적 퇴사 시 받는 위로금으로 합의한 1개월치 급여 부분을 2월 6일 입금한다는 항목

세 번째는 상기 사항은 권고사직으로 인한 합의라는 것.


그냥 보면 이상할 것 없는 매우 정확한 표현들이라고 하겠지만, 비자발적 퇴사가 이번이 세 번째이다.  첫 번째는 26살 때 휴대폰 액정 검사하는 공장에 비정규직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는데 3일 만에 검사를 못한다는 이유로 사물함에 권사직서를 끼워놓았던 일이고

두 번째는 한때는 운동권에 있어서 어머니께 불효를 저질렀다는 불효자 사장이 1년 2개월간 일한 나를 옥상 컨테이너로 불러 이 일이랑 맞는 것 같냐고 물었을 때이다.

나는 이 두 번의 가르침으로 경험주의에 기반한 노동법 반전 문가 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권고사직 합의서의 세 가지 항목을 조목조목 짚어 나갔다.


“문구를 좀 추가해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당연히 모든 사항은 녹음 중.

대표이사의 대리인을 맡고 있는 상사는 의아한 얼굴로 뭐가 문제냐는 듯 나를 바라봤다.


첫 번째 항목에 11월 6일부터 12월 21 일까지이면 원래 1월 5일까지 일한 걸 6일에 주는 시스템인데 날짜대로 일할계산해서 급여를 책정해서 주시는 건지, 인센티브 항목(회사에서는 월급240만 원이라고 해놓고 200만 원을 근로소득으로 40만 원을 사업소득으로 잡았으며 기본급에 더해지는 인센티브라는 개념 또한 40만원 사업소득에 더해주는 아주 이상한 급여 계산법을 채택하고 있었다)

도 총급여에 포함된 건가요?

라고 물었다. 대리인은 근로 날수별로 일할 계산된다는 위법 소지가 다분한 부분에 대해서도 아주 당연하게 말했고, 인센티브 포함해서 나갈 거라고 했다.

나의 여섯 번째 감각, 촉을 발동시켜 “정확한 금액을 명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대리인은 서류를 새로 뽑지 않고 대신 수기로 적어주어도 되냐고 했고 첫 번째 문장 위에 금액을 숫자로 명시해 주었다.


두 번째 항목에서 2월 6일이라는 날짜가 걸렸다. 왜 퇴사자의 급여를 할부로 주는 것인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위로금 부분을 챙겨준다기에 그 부분을 수긍을 했다.  그곳에는 다행히 금액이 명시되어 있었다.


세 번째 항목 권고사직 앞에  ‘회사 경영상의 사유’로 라는 부분을 넣어달라고 했다. 앞서 나의 경험 중에 나는 권고사직 사유가 명기되지 않은 합의서에 서명을 한일이 있었고 구직급여 수급을 못할 뻔한 적이 있었다. 회사는 어떻게 해서든 비자발적 퇴사에 대한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항목의 문장 위에 ‘회사의 경영상의 사유로’라는 수기로 적은 문장이 있었다.

내가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자, 대리인은 선뜻 사본을 주겠다고 했다. 꽤 완만히 그리고 나의 경험과 연륜으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도출했다고 생각하며 합의서를 들여다보며 14일을 기다렸는데 밤 9시가 다 돼서야 입금된 금액은 200만 원도 안 되는 금액이다.


나는 대리인에게 금액 확인을 요구했다.  대리인은 그 금액이 맞다고 말했고 근무일수가 적어 그렇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인센티브가 포함된 금액이냐고 묻는 나에게 그렇다, 명세서를 바로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통화 가능하신가요?”

대리인은 딱 잘라 명세서를 보고 통화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좋은 끝이란 정말 없는 걸까.  노사에게. ’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저도 월요일에 노동청에 부당해고 소 재기 하고, 직장 내 괴롭힘도 신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바로 전화벨이 울린다.


‘속 보인다. 그 검은 속. ’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 좀 받아주세요.”라고 말하는 대리인. 그런 뜻이 아니라…

”권고사직서에 합의한 내용 이행하지 않으시면 저도 법대로 하겠습니다. 월요일까지 조속한 처리 부탁드립니다. “

통화 안될까요? 권고사직서 내용이 지금 확인이 안 되어 금액을 잘못 보냈다는 말.


저는 정말 좋게 끝내고 싶었습니다.


나는 이 한 문장을 대화 창에 힘겹게 적어 넣고 혼자 떠들어대는 대리인의 카톡 위로 내 문장이 히마리 없이 위로 밀려올라가고 있었다.


‘좋게?’

대체 뭐가 좋다는 건지. 잘 다독여 묻어 두었던 감정들이 소용돌이친다.

‘침착하자. 침착해. 지면 안돼. (도대체 누구에게? 무엇에게?)’


통화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대리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녹음기를 무조건 켜고.

변명들이 이어진다.  자정이 넘어서 수정된 금액이 들어온다.  침대에 모로누워 쌍욕을 내뱉는다. 금주 선언을 했지만 또 술 생각이 나고. 충동들이 솟구친다. 물이 담긴 수조를 누군가 주먹으로 계속해서 두드리고 있다.


잠이 오지 않는다.

나 진짜 착하게 살고 싶은데 그게 이렇게 힘든가.  

팔뚝이나 등판에 문신이라도 해야 할까 봐. 쇠파이프를 들고 뭐라도 부숴야 잠이 오는 걸까(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 감정은 쉽사리 잦아들지 않는다. 사악함이 짐승을 깨워버리고. 긴 밤 내내 짐승 한 마리가 가장 어둡고 습한 곳에서 무언가를 혹은 그 자신을 억누르며 웅얼거린다.  

투명하고 정의롭고 그런 단어들은 왜 이렇게나 먼 거냐고.

너무 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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