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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토일 Jan 26. 2024

철권, 오스카 와일드 그리고 아버지#1

낙선소설 


 미주는 한국인의 한우 사랑에 대해서 다룬 다큐멘터리 한우 랩소디를 틀었다. 선우가 수화기 너머로 13번을 틀어보라고 하고, 소고기가 먹고 싶다. 한우 투뿔로. 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미주는 선우가 시키는 대로 하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신경은 온통 방금 전 야채, 견과류와 함께 마트에서 배송된 플레이스테이션 철권 게임 디스크에 쏠려 있었다. 선우는 미주에게 삶의 지대한 교훈이라도 된 듯 말했었다. 돈이 없지, 없는 게 없는 좋은 세상이라고. 미주는 게임 cd를 뜯다가 그런 선우의 전화를 받았다. 그의 전화벨이 울리면 항상 망설이게 된다. 1588은 차단이라도 할텐데. 미주는 이제 백수가 됐으니 소고기 특수부위는 좀 무리라며, 전화를 할 때 마다 백수임을 누누이 강조했는데 선우는 늘 뭐가 먹고 싶다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략 난감이었다. 장치가 디스크를 읽어 들이자, 심장박동보다 빠른 비트의 철권 타이틀 음악이 흐른다. 그리고 경쾌한 성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레디 파이트.     


 미주는 소설을 쓰기 위해 몇 개월째 분투 중이었다. 미주는 리스트업 된 필독서 목록을 훑어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자, 뭐부터 해야하지. 여타의 작법책과, 수상 작품집 목록의 단편들을 탐독했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얼개와 착상들을 가지고 서사를 만들어 갔다. 온라인 강의도 수강했다. 미주의 글을 읽은 소설가는 소설의 중심성이 없다고 말했다. 중심성이 뭘까. 미주는 구글과 네이버를 들락날락 거리며 소설의 중심성, 그냥 중심성 그리고 중심을 검색했다. 삶의 중심성도 모르면서 검색된 텍스트들을 찾아 읽는 자신의 모습이 꼴값 같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지만 그 중심성이란 소설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해, 안 찾아볼 수도 없었다. 중심의 한자어 풀이도 해보았다. 가운데 중, 마음 심. 마음의 가운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공동화된 구도심의 공터가 그런 것처럼 외려 그 주변에 무엇인가 잔뜩 쌓여있었다. 알레고리 어쩌고 하는 복잡 난해한 텍스트들을 마주하니 자신감이 사라졌다. 페이지 상단에 도서 배너광고가 유혹적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결재를 하고 있었다. 교보나, 영풍, 예쓰와 알라딘을 돌며 장바구니가 자신의 뇌라도 된 것 마냥 책을 담고 담고, 또 담았다. 인터넷 서점이 제공하는 미리보기만 읽었을 뿐인데도 이미 반은 자끄라캉이나 매슬로우에 빙의해 인간의 욕구를 파악하기라도 한 것처럼 굴었다. 시작이 반이니까 뭐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감이 조금 회복되는 걸 느꼈다. 내친김에 구매하기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만족감이 크게 왔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글을 쓸 마음에선 더 멀어져 노트북을 덮었다. 그녀는 조이스틱을 가져다 철권을 켰다. 엊저녁에 난이도를 하향 조정했는데도 깨지 못했던 네 번째 챕터 부터 시작했다.      


 게임은 붉은 눈을 가진 카즈야가 세계 정의 구현이라는 이유로 헤이하치와 대결을 펼치는 이야기다. 시간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형 경기장에서 어린 카즈야를 힘으로 짓눌러버린 헤이하치는 아들을 안아 들고 낭떨어지로 떨어뜨린다. 카즈야는 떨어진 채 엎드려 꼼짝없이 있었다. 카즈미는 뿔과 꼬리가 달린 악마의 현신이었다. 그런 그녀가 바로 카즈야의 어머니였다. 카즈야가 사람이면 죽을 것이고 악마면 살거라고 말하는 헤이하치. 그렇게 해서라도 아들이 사람인지 악마인지 확인하고 싶은건가. 만약 카즈야가 사람이라면, 그런 아들을 희생해서라도?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나고 자랄 동안 자식이 악마라는 걸 모를 수가 있지?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미주는 생각했다.


 게임은 다시 과거에서 현재 시점으로 넘어와 분노하는 헤이하치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뜬금없는 자막이 나왔다. 세계를 제패하는 것은 헤이하치인가 카즈야인가.

철권의 세계관은 뭘 말하고 싶은거지?      


 선우와 만난건 소갈비 맛집이었다. 숯불에 직화로 구운 고기가 익어가고, 선우와 미주는 핏기가 가시기도 전에 둘이서 6인분을 먹었다. 선우는 미주를 고기 호랑이라고 불렀는데 자신이 임인년에 태어난 호랑이였고, 미주가 병인년에 태어난 호랑이였다. 진숙이 뱃속에 미주를 가졌을 때, 그들 셋은 마포에 살았는데 저녁나절 갈비가 먹고 싶다는 진숙을 데리고 갈빗집에 갔다. 진숙은 앉은 자리에서 갈비 12인분을 먹었다고 한다. 그때 선우는 미주를 먹일 일이 벌써 부터 걱정되었다고 말했다.


 선우가 태어난 1950년은 도래할 2050년보다 까마득히 멀었다. 선우는 호적상 53년에 등록이 되어 있다고 했다. 전쟁 때문에 그러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미주는 무너진 동사무소 건물, 누렇게 변색된 서류철을 상상했다. 강보에 싸인 범띠생 갓난쟁이도. 1950년에 선우가 태어나기 직전 의사였던 선우의 아버지, 미주의 조부는 이북으로 끌려갔다. 선우의 어머니는 선우를 낳고 얼마 안 돼 금방 개가 했다. 미주는 살면서 할머니를 딱 한 번 봤다. 인천 부둣가에서 피조개를 먹기 전날에 선우는 새로 산 차에  진숙과 미주를 태워 어머니가 있는 영종도로 데려갔다. (알고보니 월미도로 데려갔고, 영종도 구읍나루까지 배편을 타고 갔다고 진숙이 미주에게 말해주었다) 야밤에 짐을 싸라기에 진숙은 말없이 짐을 쌌고, 어린 미주는 진숙의 손을 잡고 따라 나갔다. 집 앞에 나가보니 대문 앞에는 곰팡이 핀 고추장 색 프라이드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한눈에 봐도 새 차 같지 않고 헌차 같았는데도 선우는 자꾸만 새 차라고 말했다. 구읍 본가에 가서 돼지머리 놓고 고사를 지내자며 선우는 한껏 들떠 있었는데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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