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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토일 Jan 26. 2024

낙선 소설

꽃다발 02(완)

 숙소에서 윤경은 전화를 받느라 바빴다. 아빠와 오빠의 전화였는데 돈을 붙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음악을 듣는 척 이어폰을 끼고서 듣다 보면 남이지만 속이 상했다. 윤경은 그러고선 꼭 방안에서 담배를 피웠다. 나는 오이도에 가면 기분 상하지 않는 선에서 흡연은 밖에서 해달라고 부탁하기로 했다. 

 

 윤경과 나는 오이도에 갔다. 버스가 있었다. 빨간등대도 구경하고 방파제 벤치에 앉아 번데기를 집어먹으며 캔맥주를 마셨다. 방파제에는 번데기와 다슬기를 종이컵에 담아 팔거나 솜사탕을 파는 수레들이 보였다. 그리고 색색의 안개꽃이 가득한 꽃수레도 있었다. 바다를 보며 안산에 대해 생각했고 윤경은 무슨 생각인지 말이 없었다. 그러다 언니 우리 회 먹고 가요 했다. 내가 망설이자, 윤경은 웃음기가 가신 얼굴로 말했다.

 

  “이제 가면 언제 또 와. 네?” 

 횟집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름이 잊히는 풍경이었다. 윤경은 조금 취해서 사주를 믿냐고 물었다. 나는 가끔 보는데 좋은 것만 걸러 듣는다고 했다. 윤경은 자기 사주에는 흰 뱀 두 마리가 있다고 했다. 탈재(敓財)가 일어난다고. 재물을 빼앗기는 거란다. 그러면서 지갑을 뒤적거려 낡은 명함 하나를 보여주었다. 사주 명식을 바꾸고 싶으면 비구니가 되어야 한다며 명함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더니 절을 짓는데 기부를 하라기에 명함만 받아왔다고. 그런건 믿지 말고 너 자신을 믿으라고 했다. 

 

  계산하는데 윤경이 제 카드로 할테니 현금으로 이체해달라기에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한도 초과였다. 별 수 없이 내 카드로 긁었다. 윤경은 이달 월급 받으면 붙여주겠다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지아에게서 들은 거지만 윤경은 회사 몇몇 사람들에게 돈을 빌렸다고 했다. 그러고는 갚지 않았다고. 아마 갚지 못했을 것이다. 윤경이 바닷바람을 쏘이며 잠깐 걷자고 했다. 

   

  윤경은 꽃수레 앞에 멈춰 너무 예쁘다며 꺅꺅거렸다. 아이 같은 천진함에 내 얼굴에도 절로 미소가 피었다. 사람이 미워지는 것도 순간이지만 좋아지는 것도 순간이었다. 수레에 실린 파란 안개꽃 꽃다발을 사서 윤경에게 주었다. 윤경은 언니 저 꽃다발 처음 받아봐요. 남자친구한테도 받은 적 없어 하며 맹하게 웃었다. 

 

  청주로의 복귀를 하루 앞두고 윤경은 사라졌다. 야간 마지막 날 감기 기운이 있어 출근을 못 한다기에 횡단보도 건너 내과가 있다고 찾아주고는 병원비와 밥값으로 돈을 주고 나왔다. 연락이 없어 잠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퇴근 후 가보니 숙소는 텅 비어있었고 꽁초가 수북한 재떨이 옆에 시들어버린 꽃다발이 놓여있었다.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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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안산 여성 백일장 응모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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