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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반대로 하기 놀이
가을부터 세상을 상대로 반대로 하기 놀이를 시작했다. 너를 만났던 그 시기는 내가 그 놀이에 한창 빠졌을 적이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하기 놀이란 뭐냐.
반대로 하기 놀이는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완전히 반대로 해보는 것이다. 집에서 마트까지 장보러 갈때 양갈래 길 앞에 서서 늘 신호등이 없는 오른쪽 건널목을 먼저 건너고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걷다가 카페 맞은편의 마트 상하차장을 지나 입구로 들어갔다. 여기 이사 온 8년 동안 한 번도 그 길을 벗어난 적 없었다. 그 길이 가장 짧다고 무의식중에 느꼈던 건지, 아니면 아무런 의식없이 기게처럼 마트에간다라는 인풋을 처리하기 위해 몸을 움직인건지도 모른다. 반대로 하기 놀이를 시작한 그날은 나는 무슨 생각에서건 굉장히 의식적으로 순간의 선택들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정신이 깨어있는 상태였던 것 같다. 양갈래 갈림길 앞에서 나는 입력값이 없는 로봇처럼 서서 길 끝에 계속 초록불과 노란불 빨간불로 바뀌는 삼색 신호등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그 신호등이 있는 길끝까지 걸어갔다. 거기는 육교 아래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이 있었다. 나는 그 육교쪽으로 걸으면서 내 왼편의 풍경들을 처음 보았다. 마트의 상하차장이 있는 오른편 풍경과는 사뭇다른 풍경이었다. 미용실 주인이 식물에 물을 주고 있었고, 거대한 만두솥이 열리면서 김이 모락 피어오르고 그 풍경 속을 무색무취로 한 사람이 걷고 있었다. 나라는 사람. 자의식이 없는 반복되는 일상을 풍경의 일부처럼 걷고 있는 내가 있었다.
이 놀이를 안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해본 사람은 없지 않을까? 앞으로 뻗어 있는 길은 한갈래, 양갈래가 아니라 어쩌면 천갈래 만갈래인지도 모르겠다.
05. 제안
도자공예 모임의 마지막날에는 네가 붕어빵을 사왔고, 클래스의 5명이 되는 학생들, 강사와 너까지 7명이 모여 붕어빵을 나눠먹었다. 슈붕과 팥붕 논쟁이 한창일 때 너는 곧 계약직 기간이 끝나기 때문에 붕어빵 장사를 시작한다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하고는 붕어빵 기계의 종류에 대해 상세히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너는 봄에 태어날 아이에 대해 말해 거기 모인 사람들을 조금 놀라게 했다. 너의 나이, 아주 사적인 일상의 일부를 공유했다. 마지막이라는 것은 무장해제시키는 단어가 아닐까.
그날은 수험날이었고 클래스는 평소보다 일찍 마쳤다. 우리는 8주간 그릇을 만드느라 고군분투했던 흙더미들을 모은 보라색 폐기물 봉투를 모아들고 지하층을 빠져나왔고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도자공예를 배우는 두달동안 종달새라는 빵집에 들러 마감시간 전 남은 빵을 사는 취미를 만들었는데 그날도 빵집이 있는 곳으로 걷다가 차를 타고 내려오는 너와 마주쳤다. 갓길쪽으로 다가와 스르르 창문을 내리고 활기찬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내일 7시에 청년센터에 심리극 모임이 있어요. 시간되시면 들러서 차 한잔 하고 가세요. 두 눈을 끔뻑하는 찰나 동안 눈이 마주쳤다. 네 왼쪽 눈썹 옆에 움푹 패인 흉터를 들여다 보았다.
'아니요.'
분명 무의식에서는 거절을 해야했지만, 반대로 해보기 놀이를 생각해 냈다.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