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내 소설엔 늘 엄마가 출몰한다
요새 구상하는 소설에 대해 같이 글을 쓰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게 된 적이 있다. 내가 최근에 구상한 소설은 현대판 고려장으로 여행 중 엄마를 버리는 이야기다.
엄마의 환갑여행을 다녀온 후 아이디어 메모장에 메모해 놓은 이야기다. 나는 진심 엄마를 버리고 싶었다. 패키지여행 내내 흡연구역을 찾아다녀야 했고, 도무지 자신의 캐리어는 챙기려 하지 않고, 챙김이나 배려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엄마를 지켜보면서.
내 소설 속 주인공의 엄마는 바람이 나있고, 무능한 데다, 딸을 비난만 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쓸 때는 모르다가 서너 편의 소설을 완성하고 나서야 나는 문득 내 소설 속 엄마와, 엄마를 이렇게 매도하고 왜곡하고 있는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날은 공모전에 제출할 소설 하나를 탈고하고, 감자전에 막걸리를 먹다가 문득 나는 왜 이럴까, 엄마는 왜 이럴까. 우리는 왜 이럴까에 대해 생각했는데, 젓가락으로 감자전을 북북 찢으며 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2학년 아버지의 보증문제로 몇 년간 셋방에 산적이 있었다. 방과 방을 오가려면 문을 열고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와 옆방으로 가야 했는데, 방과 방을 연결해 주는 돌계단이 있었다. 그날은 비가 왔고 우산을 안 가져가서 엄마가 데리러 온 날이었다. 아마도 그 이전에도 몇 번인가 데리러 왔을 수도 있고, 정말 그 이전과 이후로는 한 번도 나를 데리러 온 적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기억이란) 그날 엄마는 나를 데리러 왔고, 그 계단에서 감자전을 해주었다. 그리고 감자전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사실 이런 기억이 있음에도 왜 엄마를 저토록 비관하게 되었을까. 작가가 되기 전에 인간이 돼야 하는 말, 인간을 이해하기 전에 엄마를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정말 엄마를 언젠가는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고 싶다.
나 자신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엄마를 만나고 온 어제도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 어떻게 걸어왔는지도 모르겠다. 집에 오자마자 짐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책꽂이의 아무책이나 뽑아 집어 던지고, 짐승처럼 울다가 결국에 팔뚝을 꼬집어 상처를 냈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나를 자신의 삶에 투영해서 자신의 위치로 끌어내리려는 사람.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지금의 엄마는 나에게 그런 존재다.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나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했고 나 자신, 나를 낳아준 세상에 있게 해 준 존재,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존재를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분투해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