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내일의 비가 올 것이다. 겨울, 창문을 살짝 열어두면 다른 계절에는 들을 수 없는 하얀 물방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문득 겨울의 중간에 서서 아무것도 쌓아둔 것이 없다,라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계절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새하얗게 물들었는데도 나는 색 하나 변하지 않고 일 년을 나태하게 보낸 건 아닌가 하고 나 자신을 휙 돌아보게 된다.
아이들이 겨울방학을 조금이라도 잘 보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나도 이 겨울을 잘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미 겨울이 거의 지나가고 있으니 꽤 오래 묵혀둔 마음이다. 하지만 사실 딱히 그것을 위해서 노력한 것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여전히 진행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셈이다. 그래도 중요한 건 아직 겨울이 한 움큼 정도는 남았다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기회, 내가 하지 못했던 것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았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물론 어느 누구든 자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을 가늠할 수는 없다. 또한 '시간이 아직 남았다'는 그 불확실한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만회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그 시간들을 또 마주하면서 늘 성공하고 늘 옳은 일만을 해낼 것이라 단언할 수도 없다. 오히려 또다시 만회해야 할 일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일을 또다시 실패로 돌려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방학을 잘 보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아이처럼 그저 시간에 기대어 보기로 했다. 기대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조리 기대해 보기로 했다. 꽤 많은 일이 실수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그것을 조금 가볍게 손에 쥐어 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이 감정과 마음과 그로 인한 소란스러움을 이제 갓 정리한 서랍을 닫는 마음으로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한 해는 1월에 시작된다지만, 봄은 그보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야 시작된다. 그리고 조금 길다 싶은 몇 달의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겨울이 온다. 그때가 되면 그 겨울의 나에게 지금의 메시지가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고 싶은 말이 많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번 또 다른 겨울을 맞이할 때마다 새하얀 마음을 잡고 묻는다. 이 마음이, 하늘과 땅을 모두 가진 이 감정과 삶이 내게 꽤 잘 어울리는 것인지. 그리고 올해의 나는 이 겨울의 서랍을 잠시 닫아두려 한다. 이제 곧 피어날 또다른 계절을 위해, 그리고 또다른 겨울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