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은 존재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딱히 의미의 존재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나 자신이 그런 애매하기 그지없는 존재라는 것에 실망감을 느꼈다. 이렇다 할 빛도 향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니. 하지만 그걸 피하려 자꾸 나의 색깔과 향기를 여기저기 드러내는 삶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처음에는 주변에 늘 사람이 많고 무언가를 이유로 늘 주목을 받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삶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곧 닳아 없어지기 시작했고, 그런 상태로 세상에 묻혀 지내다 보니 나의 존재감은 오히려 더 흐려졌다. 나는 자꾸 내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요즘에서야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다. 이게 내 색깔이야, 이게 내가 가진 향기야,라고 끊임없이 말하는 삶에는 권태가 빨리 찾아오는 것이었다. 세상이라는 은하 속 적당한 위치에서 적당히 빛을 내는 별이 결국 가장 아름다운 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전환기 어느 시점에서는 변해가는 나의 모습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조용해진 삶은 어쩌면 외로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시간은 항상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이따금씩 나를 찾아와 평정심으로 조금씩 차오르고 있는 나의 삶을 방해하곤 했다. 비교적 최근에 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그런 순간이 더 자주 찾아왔다. 한 번은 아침에 일어나 꼬박꼬박 밥을 챙겨 먹는 내가 밥 먹을 자격도 없는 사람처럼 여겨져 심장이 두근두근 한 적이 있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그런 비극의 나를 유심히 지켜보다 보니 나 자신은 왠지 그런 슬픈 이야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아 마음을 고쳐먹기는 했다.
지금의 나는, 약 십 년 전의 내가 추구하던 삶을 겸허히 내려놓았다. 삶에서 나 자신의 의미를 찾으려면 지나치게 극단적인 상황에서 자신을 배제시켜야만 했다. 뭔가 강렬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존재감이 커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주 행복하거나 아주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야만 내가 의미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밥 먹는 것에도 죄책감을 느끼는 비극적인 주인공의 이야기에서 빠져나왔고, 꽤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뭔가를 해내야만 했던 지난 삶을 내려놓았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지금, 그런 내가 너무도 편하다.
존재감은 점점 존재함, 이 되어간다. 그리고 이 마음의 집도 다 지어간다. 조금 더디고 늦었긴 하지만 내가 살아있음이 내 삶에서 가장 완벽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