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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몌 Apr 03. 2024

잡은 그 손을 놓지 않을 거란 착각


내게 있어 여름은 주로 헤어짐의 계절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잘 가꾸어진 누군가와의 감정들은 이상하게도 여름만 되면 내 손을 훌쩍 떠나버리곤 했다. 그 탓에 여름은 언제나 불면의 밤으로 가득 채워졌고 나는 매번 슬퍼졌다. 그래서인지 나는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름 특유의 습하고 더운 날씨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슬픈 일은 주로 여름에 일어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즈음엔 그 계절이 조금씩 두려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무덥고 치열한 시간들에 익숙해져 갔다. 더위를 스스로 이겨내고, 슬픔과 동떨어진 채 나와 슬픔 사이에 담을 쌓는 법을 배웠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무조건적으로 평생 지속될 거라는 생각은 이제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이성 간의 관계도, 친구 사이도, 일터에서 만나 인연을 쌓은 사람들과의 관계도,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 의해 얼마든지 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도, 마음으로 인정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만남과 이별에 대한 것도 그런 것들 중 하나다. 우리는 어떤 인연이 영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이 포함된 관계만은 예외일 거라고 자신을 속인다. 은연중에 우리는 우리에게 닥친 이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거나 부정하곤 한다. 사람 간의 이별은 그만큼이나 힘들고 스트레스받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나오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종종 자신을 학대하는 방식으로 이별에 대처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함께 속해 있던 단체에 있던 사람과 이별 후, 소속된 다른 사람들 모두와 인연을 끊은 채 잠적하는 사람도 있고, 이별 후에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버리는 사람도 있다. 특히 다른 사람 모두와 인연을 끊는 경우, 한 명과의 이별이 결국 여러 사람과의 이별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다. 마치 그 이별이 자신의 탓인 것처럼 모두에게서 떠나고 숨어 버리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10대, 그리고 20대 중반까지 내 옆에는 정말이지 사람이 많았다. 대학교 때는 외부활동을 하느라 동아리나 모임 멤버들과 항상 친하게 지냈고 회사에 입사해서도 사람들과 곧잘 어울렸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해 정해진 일정 외에도 약속을 잡는 일이 잦았고 부르면 언제든 달려와 줄 친구도 여럿 있었다. 그 당시에는 나 역시 그런 관계들이 언제까지고 지속될 줄 알았다. 심지어 한 사람을 연인으로서 만나면 웬만해선 그 사랑도 영원할 줄 알았다. 나도 내가 포함된 관계만은 예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옆에 사람이 많을수록 안 좋은 일도 많아졌다. 나와 백 퍼센트 맞는 사람은 없었다. 어떤 이유로든 친구 관계가 깨어질 때도 있었고 지인에게 실망하거나 상처를 받는 경우도 생겼다. 결국 나는 어느 순간부터 사람과의 이별에 노출되었고,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의 나는 마음을 움켜쥐고 끙끙 앓기만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인연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에 불과함을 깨달았다. 30대 후반이 된 지금, 내 옆에는 마음이 맞는 소수의 사람만 남아 있을 뿐이다. 많은 관계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마치 꿉꿉한 여름밤처럼 우울하거나 기분 나쁜 일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그런 이별들 뒤에 부정적인 감정이 남는 건 그 헤어짐의 과정이 어땠느냐와도 관련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 헤어짐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에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너랑 나랑은 영원히 친구여야 했는데', '너는 결코 나랑 헤어질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들이 깊으면 깊을수록, 이별 후의 부정적인 감정도 그대로 남았다.



신기하게도, 사이가 멀어진 후에도 나쁜 감정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쪽은 그 이별을 덤덤한 마음으로 인정한 쪽이었다. 감정적이거나 분노에 찬 '다시는 보지 말자'가 아닌, 서로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상황에서 차분하게 '안녕'을 말할 수 있었을 때, 그 슬픔의 크기 또한 그리 크지 않았다. 결국, '쿨한' 이별이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나은 셈이다.



한편, 갑작스레 닥친 이별이 주룩주룩 마음을 쓸어내리더라도 조금이라도 그것을 막으려고 노력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앞서 말했듯이 이별 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자신의 마음을 잘 돌보지 못한 경우가 될 수 있다. 이별하는 것이 마음 아프더라도 그것보다 더 힘들지 않으려면 이별 후의 삶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 낫다. 이별의 대상이 친구이든 연인이든, 그 사람이 없는 삶에 대해서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이별을 깨끗이 인정하고 모든 관계가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30대는 세상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제대로 깨달을 만한 나이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별은 나이에 상관없이 불쑥 찾아오고, 그 아픔 역시 나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또한 이별에 대처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다. 하늘이 무너진 듯 슬퍼하고만 있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직업이나 취미생활에 몰두하며 아픔을 망각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한 때 조그마한 헤어짐에도 쉽게 무너지고 슬퍼하던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후자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누구나 살면서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할 순간이 올 수 있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마음일 것이다. 굳이 어떤 사건이 생기거나 변심해서가 아닐지라도, 어떤 형태로든 이별은 온다. 오히려 그 인연에 언젠가는 헤어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인연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 모든 '영원하지 않음'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무너뜨려선 안 된다. 각자의 주어진 삶이 타인으로 인해 망가지는 것이야말로 이별 그 자체보다 더 슬픔이고 비극일 것이다. 함께 있는 시간을 영원처럼 보내되, 이별하게 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내가, 그리고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에게는 그럴 용기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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