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몌 Mar 27. 2024

영원히 학생입니다만



 




맨 처음 입학할 때의 설렘과 두려움을 기억한다. 그 당시에는 내가 보는 세상 외에는 별 거 없을 줄만 알았다. 그저 정해진 과목을 공부하고 친구를 사귀는 것만으로도 삶을 꽉 채울 수 있었던 시기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주어진 것에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던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꽤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내가 언제까지나 1등만 할 수 있는 세계는 이 우주에 없다는 걸 깨달은 채 학창 시절은 끝이 났다. 적당히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 순간이었다.



그 시간들을 회상하며 문득, 삶이 해결해야 할 문제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처음에는 그 문제들만 잘 풀어내면 모두가 인정할 만한 멋지고 좋은 삶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정답이 없다는 그야말로 정답 같은 사실을 알게 되면서 꽤 많은 문제들이 더 어려워져 버렸다. 결국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별다른 것을 할 수 없는, 혹은 할 마음이 없는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아 두려워졌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배우지 못한 무언가가 있어서 이 모든 문제들이 풀리지 않는 게 아닐까 하고 불안해하기도 했다.



특히나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어른이 된 이후로 늘 생각한다. 이 모든 것들을 내가 망쳐놓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이끌어줄 자신이 없는 나와, 내 인생조차 켜켜이 쌓아 올리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동시에 떠올리며 나도 아직 그저 학생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아니면 그저 학생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자잘한 핑계를 내세우며 삶을 헤매고 있는 것이 때로는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우리 모두는 아직 배울 게 많은 것이 아닌가, 누구를 가르쳐주고 이끌어주기에 우리 스스로는 너무도 나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우리는 그저 삶의 '일부'를 배울 뿐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결국 삶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의 총체이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무언가를 공부하고 배우고 습득하는 것이고, 우리는 결국 영원히 '배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삶 자체를 배우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엇비슷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삶이 서로 다른 것은 결국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지에 달려있는 게 아닐까.



그런 이유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배움을 갈망한다.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공부하고 학습하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경험에 노출되기를 원하며 실제로도 많은 경험을 하고 있다. 남들보다 경험이나 배움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불안해하고, 더 열심히 무언가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 배움에의 열망은 우리에게 무한한 동기를 부여하고, 보다 건설적인 행복을 선사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은연중에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공부'한다. 사는 것은 치열함이라는 것을 배운다. 여기서 멈추어버리면 왠지 도태될 것 같다는 불안감을 배운다. 그래도 노력하면 많은 것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배운다. 그러다 보면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믿음도 배우게 된다.



하지만,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이를 배움으로써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것일까. 사실상 이런 류의 배움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정답이고 누군가에게는 아닐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서, 치열하게 사는 삶은 누군가에게는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트레스일 수도 있다. 또한 어느 시점에서 무언가를 그만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망하는 것은 아니다. 노력해서 나아지는 것도 있지만 여전히 그대로인 상황도 많다. 그리고 괜찮은 사람이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교실에 남아 어려운 문제를 푸는 아이처럼 남아 있다. 앞서 말했듯이, 나를 스쳐가는 많은 문제들이 마땅한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한편, 조금은 두렵고 답답하기도 하다. 어느 정도 배워서 알고 있다,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대상이 삶에는 별로 없다. 배우고 경험하면 할수록 더욱 깊은 곳으로 도망가버리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삶이 배움의 연속이라는 것을 깨닫고, 때로는 정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 불확실함 속에서도 내 손을 잡아 줄 선생님 같은 존재가 있다는 것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모든 배움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이 자잘하고 보잘것 없는 생각들로도 충분히 마음이 편안해졌다.





삶은 정말이지 삶처럼 흘러가고 있고, 나는 그 중간에 서서 머뭇거리는 아이로 살아가고 있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아무렇지 않게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보다 지금 짊어진 짐들의 무게가 더 무겁다는 것을 느낀다. 그날 그때처럼 나는 아직 무언가를 배우는 중이다. 정답을 찾는 것보다 정답이 없는 이유를 알아가는 것이 더 즐거운, 그래서 또 하루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이전 02화 당신의 악보는 시작되었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