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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몌짱이 May 01. 2024

너의 온도는 나의 것이야?

내 안에도 역시 어떤 크기와 형태의 사랑이 있었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나의 사랑을 사랑해 주었다. 부모님, 친구들, 연인,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그 사랑을 키워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른이 되는 것은 어쩌면 작은 사랑을 점점 키워가는 과정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때로는 사랑이 사랑을 위협할 때도 있었다. 나의 사랑과 다른 사람의 사랑이 충돌하기도 하고, 때로는 소중한 나의 마음이 타인의 무관심으로 짓이겨질 때도 있었다. 그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나의 사랑의 진심이라면 누구에게나 그 진심이 와닿을 줄만 알았던 쓸데없이 순진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런 마음과 행동이 때로는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추슬러야 했던 시간을 거치며 나는 조금씩 더 깊고 강인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갔다.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랑에도 완성형이 있을까. 결국 끝이라는 게 있을까.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사랑은 끊임없이 방향을 틀고 형태를 바꾸는 존재였다. 무엇보다도 사랑은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존재였다. 우리가 사랑을 나누어 가지는 동안, 그 사랑은 색깔과 향기를 바꾸거나 새로 만들어내며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완전한, 그리하여 더 이상 변할 필요조차 없는 사랑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하지만 그 '끊임없이 변함'이 결국은 사랑을 사랑으로 남아있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 오직 한 가지 형태로만 존재한다고 고집하는 순간, 결국 사랑을 사랑으로 잃게 된다. 나의 사랑을 아무리 퍼다 줘도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면 그 사랑은 결국 의미를 상실한다. 반대로, 내가 원하는 형태의 사랑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고 고집하는 것도 사랑을 잃게 만든다. 결국, 사랑은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조금씩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연하면서도 부드러운, 그리하여 쉽게 꺾이거나 부서지지 않는 사랑을 바라게 되었다. 사실, 완벽한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다소 불완전하더라도 꾸준히 한 사람을 지켜보고 함께 그 사랑을 가꾸어 갈 수 있을 때, 비로소 그것은 하나의 의미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누어 가진 사랑은 차츰 그 형태와 빛깔을 서로에게 맞추어 가며 조금씩 시간과 공간에 맞게 흘러가는 것이었다. 






여전히, 이렇게 간절히, 사랑을 사랑하며 살고 있다. 내 안에 존재하던 어떤 크기와 형태의 사랑은 세상 속의 또 다른 사랑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감은 두 눈을 하고 묻는다. 너의 온도는, 너의 체온은 그리하여 나의 것인지. 우리는 이 사랑과 또 다른 사랑 속에서 비로소 의미일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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