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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몌짱이 Oct 16. 2024

나는 정성스레 글씨를 썼다

우리의 문장들


편지는 생각보다 늦게 도착했다고 했다. 우체국 바로 앞에 있는 우체통에 넣은 편지였지만 도착하기까지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문득 그 편지가 마치 생명이 있는 무언가처럼 여기저기 발길 닿는 대로 기웃거려 본 건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어쨌거나, 어떤 길을 선택했든 간에 편지는 도착했다. 받는 사람이 느낄 설렘과 기쁨을 편지가 오롯이 전달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손글씨를 가득 채운 편지지를 받아보는 기분을 느껴볼 기회가 잘 없다. 손글씨와 편지 쓰기에 애착이 있는 나조차도 편지를 자주 쓰지는 못한다. 편지 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편지를 주고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손 편지를 써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움직이는 대로 종이 위에 펜 자국을 남기는 손글씨의 우아함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편지는 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담은 것이기에 손 편지는 쓰는 사람에게나 받는 사람에게나 충분히 근사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나도 한때는 줄곧 손 편지를 썼다. 어릴 때는 잘 쓰지 못하는 글씨지만 빼곡하게 장난스러운 메시지를 써 내려가기도 했고, 조금 더 자라고 난 뒤에는 사뭇 진심 어린, 그리고 가볍지만은 않은 내용의 편지를 써서 누군가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그것은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었든 간에, 연애편지이자 고백이었다. 상대방을 향한 애정의 마음과 나의 '요즘'을 그대로 담아 손글씨로 편지를 썼다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 대한 열렬한 감정의 증거였다. 아마 내 편지를 받은 사람의 대부분은 나에게는 무척이나 의미 있고 소중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손편지의 단점은 아마도 글씨를 쓰고 나면 수정하기가 까다롭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연필로 쓴 편지는 지우개를 써서 지우면 되는 것이고, 볼펜으로 써도 수정테이프 같은 것들로 수정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손 편지를 써 본 사람은 알 수 있듯, 손으로 직접 쓴 글씨를 고치는 건 영 번거롭다. 모양 자체도 그렇게 예쁘지 않다. 그래서 손 편지를 쓸 때는 이메일 같은 것을 쓸 때보다 좀 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집중하게 된다. 키보드를 몇 번 눌러 단어 하나부터 긴 문장까지 한 번에 수정할 수 있는 컴퓨터 기반의 편지나 메시지와는 확실히 다르다. 



하지만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이 것이 오히려 장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집중해서 손 편지를 쓰다 보면 자신도 평소에는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던 생각들에 몰두할 수 있게 된다. 편지를 받는 상대방의 모습과 그가 좋아하는, 혹은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서 고민해 보게 되고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서도 고려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상대방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편지에 그대로 담긴다. 



삶도 어쩌면 끊임없이 손글씨와 손 편지를 쓰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 속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한다. 분명히 최선과 진심을 다해 뭔가를 하더라도 때로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글씨를 고쳐 쓰듯 이 실수들이나 잘못을 만회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국이 마음에 남기도 한다. 하지만 읽는 사람이 보기에 그 편지는 각자의 이야기가 쓰인 하나의 정성 어린 문장들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사실 지금도 끊임없이 손 편지를 쓰고 있을 모두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날씨가 선선해짐에 따라 마음도 선선해진다. 치열한 여름 속에서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몇몇 사람들을 떠올린다. 문자메시지 하나조차 제대로 보내지 못했던 무심한 마음을 잠시나마 지우고, 오랜만에 손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예쁜 편지지가 아니어도, 예쁜 글씨체가 아니라도 그 편지 하나에 한껏 기뻐해줄 나의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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