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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몌짱이 Jan 28. 2022

너의 재생목록 그 한가운데에서


지워지지 않는, 사라지지 않는 모든 조각들을 모으면 그것으로써 당신이 됩니다. 





지우기를 포기한 음악을 꾸역꾸역 듣다 보니 어느덧 그 음악도 익숙해졌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 익숙함은 짙어져만 갑니다. 이어폰 없이 듣는 음악은 주변의 적당한 소음과 어우러져 더 나은 음색을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그 소리들은 쉽게 흩어지지 않고 무리를 지어 주변을 떠돌아다닙니다. 당신도 그렇습니다. 지워지지 않는, 사라지지 않는 모든 조각들을 모으면 그것으로써 당신이 됩니다. 








당신과 내가 함께 듣는 플레이리스트를 가끔 재생해 봅니다. 굳이 노래를 듣고 싶지 않은 날도, 그저 생각을 하기 위해 노래를 틀어 봅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떠올리는 생각들은 왠지 더욱더 많은 색깔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따금씩 생선 가시를 발라내듯 노래의 가사를 듣지 않고 멜로디에만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면, 나의 생각들이 곧 가사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작은 일들을 의미로 삼거나 그것으로 인해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요즘은 꽤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나는 줄곧 생각합니다. 이런 작은 의미의 기쁨이 한때는 내 세상의 전부였다고 말입니다. 








나는 당신의 플레이리스트 그 한가운데에서 당신과 사랑에 빠지기도 합니다. 당신이 한 손을 이마에 대고 눈을 찡그리며 골랐을 노래들인 것을 알기에 나 역시 같은 표정을 지으며 그 노래 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그나저나 세상의 낭만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온 이 모든 낭만들은 꽤 많은 부분이 당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을 압니다. 지금 듣고 있는 이 음악도, 악보를 그려내며 움직이는 이 시간들의 음표도, 시간 여행을 하던 당신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손을 뻗어 노래를 끕니다. 얕은 터치 한 번으로 귓가에 들리던 모든 소리를 삭제할 수 있다니, 다행이면서도 불행입니다. 노래까지 다 껐으니 나는 이제 잘 준비를 하려 합니다. 끊임없이 의미를 입력하던 오늘 하루가 가고 내일도 그렇게 계속되겠지요. 하지만 왠지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내일 다시 볼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음악을 아쉬워하진 않겠습니다. 우리의 오늘들은 결국 내일의 새로운 악보가 되어 내일의 음악을 재생하겠지요. 



늘 그 모든 것들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이 따뜻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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