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는 것을 인정한다.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언론사에 취업해 인턴 생활을 하다가 쉬지도 않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3년 가까이 공부를 하고 바로 얼마 전까지 강사 생활을 했다. 특히 서울에서 살 때는 그 치열함에 나 자신이 치일 정도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성격 탓이다. 그간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넌 좀 쉬어야 해'였다. 처음에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모두가 열심히 해야 할 일을 하는데 왜 나만 유난히 일벌레 공붓벌레 취급을 받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휘휘 저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알고 보니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우울하고 불안해지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을 잘 못한다. 이를테면, 일을 하지 않고 쉬는 날이라도 반드시 한 번은 외출을 해야만 했다. 지금 같은 코로나 문제가 없었을 때는 외출에 대한 압박이 더욱 컸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면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기분이었다. 물론 밖에 나가서 쓸모 있는 일을 하고 다닌 건 아니다. 그렇다 쳐도 하루 한 번 이상의 외출은 나에게 하나의 생활 수칙이자 기준이 되었다. 마땅히 갈 데가 없으면 혼자서라도 카페에 갔다. 문제는, 카페에서도 오롯이 나만의 쉬는 시간을 갖질 못했다.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가서 밀린 교재 작업을 하거나 수업할 때 쓰는 문제집을 가지고 가서 한 문제씩 풀었다. 말 그대로 쉬는 날 일을 하기 위해 외출을 한 셈이다. 물론 집에 있는 시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을 하거나, 공부하는 데에 시간을 투자했다.
결혼을 함과 동시에 다른 지역으로 오게 되면서 자연스레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잠시라도 일을 쉬어 보는 것을 권했다. 그나마 몇 달을 쉬었으나 평소에 글쓰기와 책 읽기를 좋아하던 덕분에 관련된 일을 또 몇 달을 했다. 업무와 관련해서 한 달에 3,40권의 책을 읽었다. 업무의 장점은 스스로 발전하고 공부할 기회가 많다는 것이었고, 업무의 단점도 스스로 발전하고 공부할 기회가 많다는 것이었다. 책을 읽어둬야 업무를 할 수 있는 탓에 많은 책들을 읽는 습관을 들이게 되면서 업무와 관련 없는 개인적인 독서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결국 쉬면서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를 일처럼 하는 습관만 길러졌다.
그래도 지금 현재, 일을 쉬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직업으로서의 일을 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하루 종일 밀린 잠을 자거나 폰을 쳐다보거나 하는 '편한' 휴식은 취하지 못하고 있다. 정해진 시간에 최대한 일어나려고 하고, 뭔가를 계획해서 집안일을 하거나 개인 시간 내내 공부를 하는 것은 여전하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쉬고 싶다.' 쉬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나에게는 하루하루 단기적인 계획을 세워서 뭐라도 해 내는 것이 오히려 휴식 같다. 그래야만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도 많은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지만 내게는 책을 보거나 밀린 공부를 하는 것이 더 편하고 재미있는 축에 속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나 자신에게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면 나는 이런 내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생각 없이 쉬고 싶다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 있어서 휴식은 '좀 더 생각해서 나에게 좋은 일, 보람찬 일을 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내가 무조건 자기 계발만 하고 앉아 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사람이니만큼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반려동물이나 식물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물론 내가 여유를 잘 못 누리는 사람이라는 것은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을 쉬고 있는 것에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너무 바쁜 삶을 살아오다가 이렇게 나만의 자유 시간이 생긴 것이 영 어색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편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 어색함에서 탈피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무엇을 하건, 이건 나의 시간이니까 상관 없다는 식으로 마음을 바꿔야 할 때가 된 것만 같다.
비로소 주말이다. 요즘의 나에게는 사실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없고, 남편이 쉬는 날을 주말이라고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최근 몇 달은 내 인생 중 가장 편하게 쉰 기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저것 계획하고 공부하고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보낸 시간이기도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좀 쉬어도 될까' 하는 의문을 갖지 않기로 했다. 쉬어도 되나? 좀 쉬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