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찾아오는 상념들이 두렵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정작 나의 자화상은 잊히고 만다. 생각하기 싫은 기억에도 의도치 않게 손을 뻗게 되고 그것을 만지는 촉감이 좋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정신을 차려 보면 또 어느 생각 속에 있는 왜곡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나쁜 생각들은 마치 낮에 뜨는 달 같아서 뭔가 어색하고 이상하다. 하지만 그 잔상이 쉽게 잊히지 않기도 한다. 생각하는 것, 상념에 잠기는 것, 그러다 나 자신을 내어주는 일이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마음의 조각들을 쥐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 처음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남들과 다른 영역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날들을 겪으면서, 생각할 줄 안다는 것은 나의 무기가 되었다. 남들보다 예민했지만, 더불어 남들보다 섬세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온갖 감각이 열려 있는 듯 사방의 모든 것을 흡수하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때로는 좀 더 피곤하기도 했고 좀 더 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인정하고 나니 그 감각에의 충족은 축복 그 이상이었다. 좀 더 생각하고 좀 더 느끼면서 살 수 있는 삶, 그게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도 문득 생각한다. 이 낮달 같은 뜨거움으로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이 좀 더 날카로운 빛을 내뿜을 때면 나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을 때가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또 한 번 생각한다. 이 모든 것들도 나의 일부분일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나는 아직도 곧잘 그 뜨겁고도 차가운 생각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후회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