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마음으로 산다는 것
아주 먼 옛날 아름다운 왕비 가이아가 있었다. 그녀의 미모는 널리 유명해 옆 나라의 왕도 그녀를 남몰래 연모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은 전쟁터로 떠나고, 그녀는 성에 혼자 남았다. 강 건너에 살던 다른 왕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그대로 달려 와 그녀를 납치해 갔다.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 온 그녀의 남편은 불같이 화가 나 그녀를 다시 찾으러 갔다. 그런데 다리를 건너서도 그녀는 계속 눈물 지으며 강 반대편을 바라 보았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매일 전쟁에 바쁜 남편보다 자신을 아껴주는 강 건너의 그 왕에게 빠져 버렸다. 화가 난 왕은 "나를 봐, 가이아"라고 말하며 그녀의 눈을 그대로 뽑아버렸다.
그녀가 남편의 손에 눈을 잃어버린 곳이 바로 오늘날의 '미라가이아'("나를 봐, 가이아"라는 뜻)이다. 강 건너에서 그녀의 소식을 듣고 슬픔에 빠진 왕은 그녀를 길이며 그가 통치하는 곳의 이름을 가이아라고 붙였다.
미라가이아에서는 포르투와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가이아의 전경이 한 눈에 잘 보인다. 그런 전설이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무섭고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이 곳 뿐 아니라 포르투 도시 전체가 신비로운 동화 속 같다. 색이 바랜 알록달록 지붕, 여기저기 닳고 떨어진 페인트칠, 각기 다른 그림을 그려넣은 타일들, 구불구불 이어지는 골목길, 겁이 없는 고양이들, 아시아에서 온 관광객 아가씨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창가의 할아버지. 날씨가 좋으면 좋은대로, 흐리면 흐린대로 참 좋았다.
오래된 도시들이 대부분 그렇듯 길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지는 않다. 이리 꼬부라지고 저리 꼬부라지고, 오르막도 많아 길 찾기도 어렵고 걷다보면 숨이 차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혼자 걷는 그 길들이 참 좋았다. 좁은 길을 사이에 둔 집들은 각자 자기만의 색을 칠하고, 오랫동안 닳아지고 벗겨지며 긴 세월을 기록하고 있다. 그 사이에 아무렇게나 널린 빨래들은 이 곳이 오래된 유물이 아니라 진짜 살아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고양이들은 왜 이렇게 겁이 없는지,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을 뿐 아니라 남의 차 위에 벌러덩 누워 낮잠을 자기도 한다.
가이아 이야기 말고도 포르투에 얽힌 여러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법원 앞으로 가 보자. 위풍당당한 정의의 여신상이 어딘가 낯선 모습으로 서 있다. 일반적으로 정의의 여신상은 안대로 눈을 가리고 칼을 허리에 찬 채 한 손으로 '공평함'의 상징인 저울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는 게 전통이다. 그렇지만 여기 포르투의 여신상은 눈을 크게 뜨고 저울은 옆으로 접은 채, 칼을 앞으로 꺼내들고 있다.
이 정의의 여신상은 포르투갈의 독재자 살라자르가 통치를 하던 때에 세워졌다.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세계 최초이자 마지막인 지식인 독재자이다.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우민화 정책'을 최초로 펼친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의 3S 정책을 떠올리게 하는 3F 정책(축구Futebol, 종교-파티마Fatima, 음악-파두Fado)으로 그는 무려 36년 간이나 포르투갈을 독재할 수 있었다. 정치적 무관심의 무서움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살라자르 역시 다른 독재자들과 마찬가지로 비밀 경찰을 이용해 반대파를 제거하고 인권을 잔인하게 탄압했다. 당시 비밀 경찰들의 감시가 굉장히 삼엄해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그의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 꺼렸다고 한다. (호그와트 설립자 중 한 명인 '살라자르 슬리데린'이 정신 침투 마법의 대가라는 것을 보면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이 포르투에서 3년 간 거주하던 당시 이 독재자 살라자르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함부로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라는 볼드모트의 컨셉도 낯설지 않다.)
이렇게 그의 이름조차 소리 낼 수 없었지만 시민들의 분노는 고요하게 높아져만 갔고, 그들의 분노를 담은 것이 바로 이 정의의 여신상이다. 더이상 저울로 달아 기계적인 공평함을 달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며,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서는 언제든 칼을 들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1974년 4월 25일, 그가 국민들에게 장려했던 포르투갈의 국민 음악 파두 '주제 아폰수'의 노래 "그란돌라, 빌라 모레나"(Grândola, Vila morena)가 라디오에서 흘러 나왔다. 그 곡을 신호로 젊은 장교들은 전략적 요충지를 장악했다. 시민들은 집안에 머물라는 지시를 따르지 않고 거리에 나와 군인들의 소총에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 그렇게 조용한 분노들이 모여, 시민들은 민정 이양을 약속받았고 독재 정권은 막을 내렸다.
해리포터의 팬이라면 포르투가 해리포터 시리즈가 시작한 곳이라는 이야기를 한번 쯤 들어봤을 것 같다. (물론 작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는 없다.) 그래서 도시의 이곳 저곳에 해리포터와 관련이 있다는 장소들이 있다. '설'에 불과하지만 뭘 봐도 설레기만 하는 여행객의 마음으로는 '그리핀도르'가 유래했다는 사자 분수를 봐도 신기하고, 인기가 많아져 언제부턴가 입장료도 받고 사진도 못 찍게 하는 렐루 서점의 계단을 보면 자연스레 호그와트 기숙사의 움직이는 계단이 떠오른다. 세계에서 제일 예쁜 카페 순위 6위에 선정되었다는 마제스틱 카페는 해리포터 팬이 아니더라도 차 한 잔의 여유와 함께 고풍스러운 인테리어가 주는 예스러움을 느껴볼 만 하다.
해리포터와 관련된 여러가지 소문들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히 포르투에는 무언가 영감을 주고, 감수성을 자극하는 냄새가 가득하다.
카르무 성당은 포르투를 찾는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아닐까 싶다. 겉에서 보기에는 하나의 큰 건물로 보이는 이 성당은 사실 '세계에서 제일 좁은 건물'을 사이에 둔 두 개의 성당이다. 육체적 순결을 지켜야 하는 수도승과 수녀들이 그 좁은 건물에서 살았다고 한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푸른 아줄레주 앞에는 이 거대한 아줄레주와 '기념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이 바글바글하다.
포르투갈 전역에서 볼 수 있는 타일 공예 아줄레주는 아랍 문화에서 유래한다. 일반 가정집들도 소박하고 오래된 타일들로 알록달록 장식이 되어 있다. 하얀 타일에 파란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넣어 하나의 커다란 화면을 구성하는 위 사진과 같은 아줄레주는 성당이나 기차역 등 공공 건물에서만 발견된다. 전통적으로 파란색은 '귀족의 색'이었다고 한다. 귀족들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 파란색이 귀족을 상징하나 잠시 생각했다. 사실은 보다 간단했다. 파란색 물감이 비쌌기 때문.
포르투에서 또 기억에 남는 장소는 공작새들이 한가롭게 걸어다니는 크리스탈 정원이다. 날씨가 좋아 유독 공원은 푸르렀고, 쉬어가는 마음으로 잠시 앉았다가 천천히 걸어다니는 관광객들과 현지인들 사이에서 나도 가만히 앉아 햇빛을 즐겼다. 공작새들은 누가 걸어다니든 앉아있든 신경 쓰지 않고 옆에 가서 모이를 쪼다가 또 스쳐지나가곤 했다. 이국적이고도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고요한 행복을 느꼈다. 이 외에도 포르투에서 기억에 남는 풍경들이 많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관인 소아레스 도스 레이스 국립미술관에서 본 섬세한 조각품들은 왠지 가슴을 찌릿하게 했고, 날씨가 좋은 날이면 바닷가까지 훤히 보인다는 클레리구스 탑에서 내려다 본 포르투의 풍경도 탄성을 자아냈다.
그렇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포르투에서 들은 이야기들이다. 이 이야기들을 나에게 해 준 건 포르투에서 나고 자랐다는 친구이다. 동 루이스 1세 다리는 사실 에펠이 만든 게 아니라 에펠의 제자가 만들었다고, 그 옆에 꼭 닮은 마리아 피아 다리는 동 루이스 1세의 부인이었다며 이리 와 봐, 저기 봐 봐 나를 이끌던 친구는 포르투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으로 눈을 빛냈다. 그런데 이 글을 쓰기 위해 새삼 인터넷을 뒤져보니 그 어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조차 찾을 수 없었다. 가이아 전설이나 정의의 여신상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가 그랬다. 심지어 그 친구는 마리아 피아 다리의 주인공은 어린 나이에 작은아버지와 결혼했고 우울증과 불안 증세에 시달린 '미친 여왕'이었다고 했는데, 이 '미친 여왕'은 마리아 1세로 마리아 피아와는 별개의 인물이었다. 지금은 연락조차 하지 않는 친구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내가 사랑한 포르투의 이야기들은 전부 거짓말이었나.
그러면서 포르투의 사진들을 다시 보니 참 여행자로 지낸다는 것은 그렇다. 호시탐탐 주머니를 노리는 소매치기범들의 타겟이고, 다시는 볼 일 없을 상인들은 양심도 없이 덤탱이를 씌우기도 한다. 호의로 나를 도와준다던 현지인들이 때로는 잘못된 길을 알려주기도 하며, 때로는 스스로 잘못 예매를 하거나 잘못 길을 들어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걱정과 불안을 안고도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길에 오르는 이유는, 가끔 좀 손해를 보더라도 괜찮은 이유는, 그만큼 즐겁기 때문이다. 이국적인 풍경, 맛있는 음식, 색다른 경험, 무엇보다 내가 상상치도 못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나와는 너무 다른 새로운 친구들.
그래, 어쩌면 친구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은 어렸을 때부터 엄마로부터 들었던, 할머니로부터 전해오는, 포르투에 전해오는 그런 '지역 민담'인가보다. 아니, 조금 속았더라도 괜찮다. 아무런 댓가도 없이 나에게 도시를 소개해주고 싶다던 친구의 신난 목소리 '저기 성당 앞에 아름다운 기둥을 봐, 저게 뭔 줄 아니? 사실은 옛날에 사람들을 처형하던 곳이야!' 사실이 아니면 어떤가? 나는 참 즐거웠다. 가이아 이야기를 듣고 '미라가이아'는 나에게 잊을 수 없는 풍경으로 남았고, 정의의 여신상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의 정치 문화를 돌아보고 아주 오랫동안 되새겼으며, 어린 시절에나 읽었던 해리포터의 환상적인 마법 세계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여행자의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길을 잃으면 낯선 사람에게 가서 낯선 언어와 손짓 발짓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불굴의 정신이기도 하고, 오르막길만 계속되는 길을 걸으면서도 '어머, 여기 좀 봐'하고 새로움을 발견하는 설렘이고, 거창한 계획도 다 포기한 채 때로는 늦잠을 실컷 자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여유이다. 그리고 또 하나, 가끔은 손해보고 속는 일이 있어도 "어쩔 수 없지"하고 넘어가는 마음, "그런 일이 있었구나"하고 금새 웃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사는 것이다. 그게 우리의 여행을 더 즐겁게, 인생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