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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영 Feb 08. 2017

보통 여자의 권태로운 하루

아침에 일어나 김이 펄펄 나는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한다.

거울을 봤다. 안색이 파리하다는 생각을 했다.

로션을 바르는 것조차 귀찮아 괜히 한숨이 푹 나온다.

로션을 바르며 다시 거울을 봤다. 못생겼다.

신나는 노래를 틀어 기분 전환을 해볼까 하다 그마저 귀찮다.

그냥 또 어제와 같은 립스틱을 바르고 거울 속의 나를 향해 눈을 깜빡인다.

밖에 나가면 춥겠지.

옷장으로 가 가장 예쁜 옷 말고 가장 무난한 옷으로 골라 입는다.

전신 거울 앞에 서니 또 내가 보인다.

가방에 핸드폰과 지갑을 챙기고 신발을 신는다.

신발이 별론가. 아 모르겠다.

문을 여니 찬 기운이 훅 몸을 파고든다.

하루는 그렇게 시작된다.



편의점에서 입가심 할 음료를 찾는다.

달달한 카라멜 마끼야또.

편의점 아메리카노는 도무지 맛이 없다.

계산해 주는 알바생 언니가 참 화사하고 예쁘다.

요즘 여자들은 다 날씬해.

다이어트를 결심하다가 손에 들린 마끼야또를 보니 참 내 꼴이 우습다.



그저 그런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친구와 맥주 한 잔을 한다.

별 거 아닌 얘기에도 깔깔 대며 웃다가 화장실에 가는데 훑어보는 시선이 여럿 느껴진다.

괜히 치마를 끌어내리며 도도한 척 앞만 보고 걸어간다.

화장실에 갔다 자리로 돌아가는 중에도 기분 나쁜 시선은 줄곧 따라온다.



늦게 온 친구가 보자마자 입술색이 그게 뭐니, 하고 핀잔을 준다.

그래서 내가 남자친구가 없는 거란다.

아침에 분명 바르고 나왔는데 하루종일 덧바르지 않아서 다 지워졌나보다.

우습지도 않은 말에 친구들이 낄낄거리는데 따라 웃는 수밖에 없다.

나의 '남자 사람 친구'라는 저 친구는 나를 위한다면서,

여성스럽게 손수건도 들고다니고 그러란다.

그냥 또 웃어넘긴다.



친구들과 헤어져 버스를 탄다.

분홍색으로 표시가 된 임산부 자리만이 비어있다.

괜한 오해를 사기 싫어 서서 간다.

다음 정류장에서 탄 수트를 빼 입은 남자가 자연스레 분홍색 자리로 가 앉는다.

딱히 할 일도 없어 창밖을 보며 노래를 듣는다.



어느 새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해 내리면서 노래를 끈다.

밤길에 노래를 들으면서 걸어가는 여자는 없다.

노란 가로등은 환한데도 어쩐지 음침한 데가 있다.

보폭은 넓게, 발놀림은 빠르게, 집에 도착한다.



다시 아침에 불쌍한 내 모습을 비추던 거울 앞이다.

화장을 했는데도 불쌍해보인다.

그냥 누워 자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화장을 지운다.

옷을 갈아입고 자리에 눕는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많지만 눈을 감는다.

내일도 똑같은 하루겠지만 일단 잠을 청한다.

그리고 평범하게 그렇게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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