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과 고립의 시대
삼일절이었던 금요일, 우크라이나 출신의 재즈 피아니스트 바딤 네셀로브스키(Vadim Neselovskyi)의 내한 공연을 보고 왔다.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우크라이나를 위한 무료 기부 공연으로, 자발적으로 기부하고자 하는 금액을 티켓값으로 결제하거나 현장에서 기부할 수도 있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수익금은 우크라이나의 전쟁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기부될 예정이라고 한다.
공연 레퍼토리는 바딤의 최근 앨범 <Odesa>에 수록된 솔로 피아노곡들로 이루어졌다. 1977년 오데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바딤이 고향의 풍경과 그곳에서의 추억을 담담하게 이야기해 주는 듯한 자전적인 곡들이 담긴 앨범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에 제작된 이 앨범은, 침공 개시일로부터 약 4개월 후에 발매되었다.
발매 당시 디지털 앨범을 구매했을 때는 이미 전쟁 소식을 접한 후였다. ‘아, 이 사람도 우크라이나 사람이었구나.’라고 생각하고 음악을 들으니 왠지 더 애잔하고 처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우크라이나 출신 오케스트라 단원들에 대한 뉴스도 여럿 들었던 터라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고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지켜보는 연주자는 이따금 건반 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로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침묵하고는 했다.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추스르기 위함이었는지, 다음 연주를 이어가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것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전쟁이라는 게 실제로 어떤 것인지, 꿈을 따라 떠나온 고향땅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마음은 어떠할지 나는 정말로 알 수 없다. 고작 몇만 원 보태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우리가 매일 밥을 먹고, 일하고, 즐기는 일상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라고 짐작만 해볼 뿐이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거리마다 내걸린 현수막들을 본다. 선거 사무소 건물을 뒤덮는 초대형 현수막도 있다. 동네마다 ‘OO구의 아들, 딸, 며느리'임을 내세우는 구태의연한 문구부터, 별로 책임질 생각이 없어 보이는 공허한 구호와 공약들이 펄럭인다. 4년마다 이맘때쯤이면 조금은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어디선가 튀어나오고, 서로 자기를 좀 보아달라고 한껏 몸을 부풀리고 과장된 몸짓을 하며 악을 쓴다. 공연장 안과 밖은 너무도 다른 세상이다.
포털 뉴스면은 온통 선거 이야기뿐이다. 누가 어디에 전략 공천됐다느니, 누구는 컷오프되어서 탈당할 거라느니, 오로지 금배지 한 번 더 다는 것이 목적인 이들의 동향을 열심히 중계한다. 일부러 국제 뉴스를 찾아보지 않는 이상, 나라 밖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과연 없는지,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은 없는지 알기는 쉽지 않다.
선거, 물론 중요하다. 먹고사는 일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우리 지역의 일꾼을 제대로 뽑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결코 덜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 바깥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을 그저 남의 일처럼 여겨도 되는 것일까. 피곤하게 남의 나라 일까지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속 편하게 우물 속에서 계속 살아가도 되는 것일까.
괜스레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다.
* Vadim Neselovskyi <Odesa> 앨범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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