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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깃 Mar 25. 2024

작은 위로

오래된 악기 하나가 주는..

하늘은 뿌옇지만 제법 포근했던 토요일, 건대 입구에 있는 한 아파트로 향했다. ‘피콜로 첼로’라는 바로크 악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마치 시대 악기 수집이 취미인 엄청난 부호의 일정 같지만, 당연히 아니다. 클래식 전문 출판사 프란츠에서 진행하는 음악 강연을 들으러 다녀온 것이다. 한 가지 악기를 정해 연주자의 자세한 설명과 함께 연주도 들을 수 있는 시간이다. 요즘 들어 유난히 문화생활에 대한 목마름이 강해진 탓인지, 그냥 날씨 따라 뒤숭숭해지는 마음을 달래고 싶어서인지 공연이든 강연이든 뭐든 새로운 문화 경험을 닥치는 대로 하려는 중에 접한 기회였다.


이번 시간은 바로크 첼리스트 이현정 선생님이 소개하는 피콜로 첼로의 시간. 이탈리아어로 ‘작은 첼로'라는 뜻으로, 현대 첼로보다는 자그마한 체구를 가진 바로크 첼로의 한 종류다. 지금 우리가 보는 첼로의 모습이 되기까지 그 발전 과정 중간쯤에 있는, 현대 첼로의 연락 끊긴 먼 친척? 조상? 정도 되는 것 같다. 흔히 보는 현악기처럼 네 개가 아닌 다섯 개의 현이 달려있는데, 양의 창자를 꼬아서 만드는 ‘거트 스트링'과 거기에 얇은 철사를 덧댄 스트링을 쓴다고 한다. 철제 스트링만을 쓰는 현대 첼로보다는 다소 거칠고 투박한 소리가 난다.

 

바로크 첼로에 쓰이는 거트 스트링


첼로의 몸통을 고정하는 엔드핀이 없어 첼로의 아랫부분을 연주자의 다리로 붙든 채 연주해야 하고, 음정 잡기도 더 어렵다는데…. 뭔가 남들 다 가는 쉬운 길은 거부하는 뚝심이랄까, 굳이 시대 악기를 다루는 음악가들의 모습이 참 고집스럽기도 하고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악기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끝나고, 실제 연주를 들어볼 수 있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아는 곡이라고는 첫 번째 프렐류드 밖에는 없다. 가장 대중적인 멜로디인지라 프렐류드는 가장 마지막 곡으로 연주해 주었다.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첼로, 그것도 바로크 첼로 소리는 생각보다 훨씬 우렁차고 깊은 소리였다. 현대 첼로와 비교해 보자면, 음과 음 사이, 첫 음에서 다음 음으로 넘어가는 동안의 여음, 활이 훑고 지나간 현의 떨림이 노골적으로 느껴진다고 할까. 현대 첼로가 들려주는 매끈한 소리는 아니지만, 순간순간의 여운이 오래 남는 소리, 생생한 날것의 소리 같았다.


점점 결점은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발전한 현대 악기의 모습을 보고 듣고 있으려니, 한 사람의 성장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에는 조금은 부족하고 완성되지도 않은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무렇지 않다. 전혀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다. 소박하고 솔직한 그때의 모습도 그런대로 매력이 있다, 하지만 모자란 부분은 꾸준히 채우고, 거칠게 튀어나온 부분들은 조금씩 다듬어 매끈하게 완성된 모습을 찾아가는, 어른이 되는 고된 과정을 힘겹게 지나온 진짜 어른들을 보면 너무나도 멋지다.


완성체가 된 남들을 보며 부러워만 하다 보면, 나이만 먹고 철은 전혀 들지 않은 내 모습이 어쩐지 초라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내 자존감만 깎아먹고 스트레스만 쌓여간다. 남들이야 어떻든, 이토록 미완성인 나도,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부족하고 거칠고 투박한 나의 모습도,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감히 위대한 바로크 악기를 보며 작은 위로를 받아본다 (그저 정신 승리일지 모르지만).


바로크 첼로(위)와 피콜로 첼로(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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