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자의 눈물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은 나의 L님.
'나의'라는 표현을 쓴 건 나만의 욕심인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의 애정에 비해 항상 그녀는 물리적 거리를 두었기에. 마음을 표현하면 항상 조금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너무 많이 힘든 마음을 표현하며 울던 날, 내가 너무 안쓰럽고 안타까워 손을 잡아드려도 될지 묻자, 그녀는 (실제로) 뒤로 물러서며 괜찮다고 했다. 자살사고가 너무 심해서 걱정하던 날들이었는데 처음으로 연락이 되지 않고 상담에 나타나지 않던 날. 그 후 일주일간 정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생각만 나면 눈물이 났었다. 그러다 연락이 닿고 상담에 다시 나타났던 날. 걱정했던 마음을 이야기하며 나도 모르게 또 눈물이 났는데 그녀는 나의 눈물이 의아하다는 듯, 혹은 당황스러워하며 나를 봤다. 그리고 상담 종결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내가 헤어지는 아쉬움을 마음 가득 느끼고 있었는데 그녀는 오히려 나를 위로하듯, 담담하게, '상담이 끝나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그만큼 좋아져서 헤어지게 되는 거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마음의 거리도 멀었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그건 확실히 알 수 있다. 가끔 나에게 전했던 말들, 행동, 편지 등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들은 항상 모두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느껴졌는데 너무 많이 표현해 버리면 헤퍼져 사라질까, 손에서 쉽게 빠져나가버리는 모래처럼 사라질까, 아주 조심스럽고 비밀스럽게 나에게 전해졌다. 항상 너무 많은 말을 하지 않고 짧은 문장에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게 느껴졌다. 아마 아주 어릴 때부터 불안정한 가정환경에서 제대로 된 돌봄과 양육을 받지 못한 것뿐만 아니라, 그 환경에서 일어난 범죄피해 사건과 그 영향 때문에 많은 마음의 상처와 타인에 대한 불신이 쌓여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나타난 어떤 낯선 이의 호의와 친절이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연히 누군가 다가오면 그만큼 자동적으로 뒤로 물러서게 되는 것이겠지. 또다시 상처를 받을까 거리를 두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일 것이다.
우리 사이엔 약 2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울감이 좋아졌다가 트라우마와 관련된 어떤 계기로 또다시 바닥까지 내려가기도 하고, 중간에 상담이 종결될 위기도 있었다가(상담을 안 받고 싶다고 했다) 다시 이어지고, 중간에 제3자가 나타나 나를 힘들게 하기도 했고, 결국 재판과정에 참여하게 되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어냈던. 무엇보다 자살사고가 사라지고 우울감이 나아졌다. 그렇게 2년 만에 '합의종결'을 했다.
L님은 거의 한주도 빠지지 않고 상담에 참여했다. 딱 한번 상담에 오지 않았던 날은 아까 말했던 그날. (내가 보호자에게 바로 연락했던걸 알고 다시는 연락 없이 빠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상황이 좋아져도 나빠져도 힘든 날도 괜찮아진 날도 매주 월요일 오후에 우린 만났다. 이러한 성실함과 전념(commitment)이 이 심리치료가 성공적으로 나아가는데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그녀가 얘기하기를, 내가 L님이 정말 무슨 일이 생겼는 줄 알고 걱정했다며 상담에서 울던 순간에 많은 걸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순간을 결정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그건 내가 진심으로 L님을 걱정하는 마음이 전달된 것이었을거다. 사실 상담에서 상담자가 우는 건 안된다(고 배웠다). 왜냐하면 내담자가 감정을 표현할 때 상담자는 그것을 굳건히 옆에서 버텨주며 받아줘야지 같이 울어버리는 건 상담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니까. 사실 나는 잘 우는 상담자다. 특히 육아휴직 후 복직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이게 호르몬의 작용 때문인지, 2년 만의 복귀가 힘들어서인지, 변화가 많아서인지 감정조절이 잘 안 됐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부끄러운 흑역사다) 지금은 수도꼭지가 고쳐져서 아무 때나 울지 않고 세상사에 찌들어(ㅠㅠ) 눈물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이렇게 내담자에 대한 진짜 감정이 드러나며 눈물이 나는 건 실제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도 하고, 내담자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것 같다. L님의 차가운 마음에 뜨거운 눈물이 한방을 톡 떨어져 조금이나마 녹여주지 않았을지.
자꾸 짝사랑같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L님을 정말 아꼈고 상담에서 최선을 다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다.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려고 귀를 기울이며 애썼고, 여러 상담 이론을 통해 잘 개념화하고자 했다. 또한 여러 가지 근거기반의 심리치료기법들도 두루 활용했다. 그리고 있는 힘껏 마음을 주었고 그 마음이 어느 정도 가닿은 것 같다. L님은 낯선 사람들과 시선접촉이 어려웠다. 그래서 처음부터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항상 고개를 숙이고 말을 했다. 전체 상담의 중반부쯤, 그녀는 한번 크게 결심한 듯 내 눈을 보며 말했다. '제가 선생님 목소리는 너무 또렷하게 잘 기억을 하는데, 선생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면 나중에 너무 슬플 것 같아서요.' 그리고 마지막 회기에 또 한 번. 이렇게 너무 감격스럽고 뭉클한 두 번의 눈 맞춤이 있었다. 남들에겐 너무 당연하고 쉬운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어렵고 힘과 용기를 내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 시도가 너무 감동적이고 감사했다.
상담이 끝나고 만나지 못한 지 2개월. (날짜를 세어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놀랐다. 엄청 오래된 것 같은데) 잘 지내고 계실까.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게 서로를 위해 더 좋은 특이한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 그렇지만 생각나고 그립기도 한 나의 짝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