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출거부]
TRANSACTION REJECTED
거래가 거절되었습니다.
캄보디아에 입국하면서 가진 달러를 다 썼기 때문에 환전을 할 돈도 없었고 당장 가진 캄보디아 현금도 없었다. 국경을 넘자마자 인출을 하려고 ATM을 찾았다. 하지만 국경 주변에는 ATM이 없었고 버스가 캄보디아의 젖줄 메콩강 주변 끄롱스통트랭 이라는 도시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ATM을 만날 수 있었다.
20만 리엘 (한화 약 50,000원)을 눌렀지만 거래가 거절됐다. 아무래도 돈이 5만 원도 없는 듯했다. 절반인 10만 리엘을 눌렀으나, 또다시 거절됐다. 25,000원도 없다는 생각에 조금씩 걱정이 됐다. 다시 8만 리엘을 눌렀다. 하지만 여전히 거래 거부 메시지가 떴고, 마지막으로 5만 리엘을 눌렀다. 쓰르륵 기계에서 돈이 읽히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결코 기뻐할 수 있는 소리는 아니었다. 5만 리엘이라면, 고작 한화로 14,000원 12달러 정도 밖에 안되는 돈이었다.
프놈펜에 도착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통장 잔고 확인을 부탁드렸다. 외국에서는 씨티은행을 제외한 일반은행 카드는 잔액 확인이 ATM에서 불가능하다. 그 흔한 공인인증서도 없어서 핸드폰으로 잔액을 확인할 수 없어서, 통장을 갖고 계신 엄마께 부탁을 해야 확인을 할 수 있었다.
"돈이 없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실제로 들으니 좀 더 섬뜩해졌다.
"아... 이젠 진짜 바닥을 쳤구나."
전화로는 엄마한테 지금 당장 현금으로 50달러 정도 있고, 곧 교회 단기선교팀을 만나니까 당분간은 괜찮을 거라고 안심을 시켜드렸지만, 현실적으로 드디어 여행을 더 이상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는 생각에 혼란에 휩싸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늘 프놈펜에서 교회 단기선교팀을 만나 합류하면서 일주일간 봉사활동을 하기로 되어있어 일주일간은 숙식 걱정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우선 눈앞에 닥친 일에만 집중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단기선교팀을 공항에서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눈 뒤, 예약해 둔 호텔로 이동했다. 여행을 떠나온 이후로 처음으로 묶는 호텔이었다. 항상 도미토리에서만 지내다가 호텔이라는 곳을 들어오니 마치 한국에 있는 내 집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침대도 너무 푹신했고, 뜨거운 물도 잘 나왔고, 와이파이도 빵빵하게 터졌다. 무엇보다도 호텔에 비치된 수건이 있어 늘 축축하고 습한 냄새가 나는 내 수건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하지만 그런 호텔에서의 기쁨도 잠시 반갑지 않은 이메일이 한 통 날라왔다.
[후원 프로젝트가 좌절되다]
여행 출발 전, 클라우드 펀딩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고, 준비성이 부족했던 나의 프로젝트는 목표금액의 5%에도 못 미치며 완전히 실패했다. 그나마 희망이 있었던 것은 여행 출발 바로 전에 들어온 기업의 후원 프로젝트였는데, 성사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프로젝트였다.
기간은 15년 8월에서 9월 사이 유럽에서 본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사진촬영을 진행한 후, 그 사진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회사 측이 후원을 해주시는 형태였다. 무전으로 출발하긴 했지만, 사실 버틸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도 이 프로젝트에 약간의 기대를 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회사의 재정상황 악화로 인해 아쉽게도 팀장님으로부터 후원하기 어렵다는 메일이 날라왔다. 안 그래도 통장 잔고가 더 이상 남지 않은 상태를 확인한 상태였는데, 후원이 좌절되었다는 소식에 큰 낙심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류문화 진흥재단 펀딩 실패, 중소기업의 후원 프로젝트 실패, 남은 돈은 고작 현금 5만 리엘, 그리고 나에게 남은 것은 봉사활동 촬영을 위한 시한부같이 느껴지는 7일뿐이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른 봉사단원분들께 이런 낙심한 표정이 드러나면 안 되는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표정관리가 되질 않았다. 덕분에 권사님들께서는 내가 못 먹어서 그런가 하고 열심히 음식을 해서 먹이셨다. 사실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여행 도중 돈이 없어서 몇 번 민폐를 끼친 이후로, 돈이 없는 여행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졌다. 이렇게 민폐를 끼치면서까지 여행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고, 설사 여행을 더 진행할 수 있다 한 들, 나에게는 아무런 기쁨도 없을 것 같았다. 호텔에서 첫날밤 이런저런 생각으로 밤새 뒤척이다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그래, 우선 봉사활동 촬영에 최선을 다하다가
그 이후에도 답이 나오지 않으면 캄보디아를 마지막으로
프놈펜에서 여행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자."
사진 / 글 폴작
작가블로그 walking-st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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