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서 먼저 찾아와주시던 여행자들]
언제까지 시엠립에 계세요?
제가 곧 그곳으로 갈 예정인데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꼭 만나 뵙고 싶어요!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겪은 이야기로 인해 신기해하며 나를 만나보고 싶다며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여행 이야기가 궁금하다며 찾아와주신 분들도 있었고, 사진을 찍히고 싶다며 연락이 오신 분들도 있었다. 연락 오신 모든 분들을 만나고 싶었으나 시간이나 일정이 겹쳐서 다 만날 수는 없었다. 노골적으로 사진을 목적으로 오시는 분들보다는 '나' 라는 사람에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을 우선으로 만나고 싶었고, 그분들과 함께 앙코르와트를 여행했다.
감사하게도 가이드님께서 사람들을 만날 때 쓰라며 아들의 자동차를 빌려주셨다. 덕분에 넓고 넓은 앙코르와트를 정말 편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사실 당시에는 국제면허증도 없었는데, 캄보디아는 그런 거 없이도 운전해도 걸리지 않는다며 쿨하게 차를 빌려주셨다. 중간에 안전벨트 안 했다고 걸리긴 했는데, 3달러 쥐여주니 쿨하게 보내준 경찰관도 있었다.
여행자들과 만나면서 그분들의 사진들도 자연스럽게 담아주게 되다 보니 앙코르와트만 7번을 다녀오게 됐다. 입장료만 무려 10만 원이 넘게 썼다. 입장료를 내주겠다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한사코 사양하고 내 자비로 입장료를 부담했다. 비록 큰 돈이었지만 나에게는 의미 있는 지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하게 앙코르와트에서 스냅 포트폴리오도 남길 수 있었고, 다양한 여행자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이야기와 생각들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그들과의 이야기를 글로 정리했고, 또 그 이야기는 또 다른 인연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더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 정도만 되어도 10만 원이 주는 이상의 가치를 받은 것이 아닐까.
[가이드님 가족과 함께 하는 마지막 시간]
정현아 나 앙코르와트에서만 가이드를 14년을 하는데
일이 아니라 놀러 들어오는 건 처음인 것 같다.
비가 추적추적 떨어지기 시작하는 앙코르와트 입구를 들어서며 가이드님께서 입을 여셨다. 무언가 장난기 섞인 목소리였지만 한 편으로는 가슴 한 켠을 울리는 듯한 한 마디셨다. 그토록 매일 같이 오는 앙코르와트라도 어떤 목적을 가지고 오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특별할 수 있는 순간도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다. 여행을 하면 그런 순간들을 자주 목격한다. 집 앞에 베란다에서 빨래를 털털거리며 널고 있는 내 모습은 나에게는 일상이지만, 이곳을 어쩌다 한 번 오는 여행자들에게는 추억하고 싶은 이색적인 광경일 수 있다. 모든 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이유는 없지만, 일상이 무료하고 진취적이지 못할 때마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것도 좋겠지만, 나의 마음가짐을 조금만 바꾸고 시선을 달리한다면 내가 서있는 이곳에서도 그동안 느끼지 못 했던 특별한 의미와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어머니의 한 마디는 여행자의 시선을 가진 나에게 잔잔한 감동과 깨달음을 주셨다.
시도때도 없이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날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웠던 앙코르와트 여행이었다. 소중한 카메라가 비에 젖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그 분들과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을 아름답게 담아 드리고 싶었다. 나에게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으니까. 그리고 결코 잊고 싶지 않은, 잃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었니까.
[친동생 같은 두 녀석]
시엠립에 3일 정도만 있으려고 했던 일정은 가이드님과 이 녀석들을 만나게 되면서 10일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자신들의 편한 보금자리를 10일이나 내어주기 쉽지 않았을 텐데 이 두 친구들은 나를 마치 친형처럼 대해주었다. 특별히 나의 룸메가 되어주었던 정인이와 함께 밤샘토크를 나누던 시간들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나눈 대화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 머릿속 편린에 불과할지라도, 그들과 함께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에서 호흡하며 느꼈던 그 감정들은 영원이라는 시간 동안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내 가슴속에 머무를 것 같다. 만일 654일간의 세계일주를 통틀어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 3가지를 고른다고 하면 이들과 함께 했던 순간들을 고민하지 않고 선택하겠다.
형님, 우리는 아직 젊으니까 포기는 사치입니다. (재헌)
떠나시면 당신의 향기가 조금은 많이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형의 세계일주를 응원합니다. (정인)
이들의 응원과 믿음이 있어 나는 이 모든 여정을 감당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고맙다. 사랑하는 동생 재헌이와 정인아:)
[난 꿈꾸는 사람이 좋다, 다시 만나자]
캄보디아를 떠나는 마지막 날, 가이드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며 나를 방으로 부르셨다. 나도 드릴 것이 있기에 안 그래도 찾아뵈려고 했었다. 오늘 찍은 사진을 사진관에 가서 인화를 해왔다. 사진을 이쁘게 액자에 꽂아 선물로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해주신 것들이 너무 많은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것 밖에 없었다. 액자를 받아드시더니 마음에 드셨는지 가볍게 짧은 미소를 지으셨다.
가이드님은 자기도 편지를 써 주신다며 응원 메시지를 쓰는 노트를 달라 하셨다. 펜을 들고 거침없이 적어내려가기 시작하셨다. 아무래도 전할 말을 이미 다 생각해 놓으신 듯했다. 다 쓰신 후에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시더니 쓴 메시지와 함께 내 앞에 쓱 내미셨다. 다름 아닌 100달러였다.
난 꿈꾸는 사람이 좋다
너의 꿈을 응원한다
다시 만나자.
그리고는 다시 보자는 말씀과 함께 일찍 들어가서 쉬라며 나를 방으로 보내셨다. 해준 게 이미 너무나도 많으신데 100달러까지 챙겨주시는 그분의 마음을 보며 어떻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몰랐다. 훗날에 꼭 반드시 좋은 것으로 은혜를 갚겠다는 마음으로 나는 그렇게 다음 날 캄보디아를 떠나 태국으로 향했다. 가이드님! 시엠립에서 정말 잊지 못할 추억과 도움을 주심에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진 / 글 폴작
작가블로그 walking-studio.com
작가인스타 @walking_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