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임신 초기2 - 초기에 여행이라니

그것도 강원도 정선으로?

by 걷는 아빠

D-208 임신 9주 차. 정선 여행


아내가 여름휴가에 별 일정이 없어서 내가 집에 있지 말고 여행을 가자고 했다. 나는 회사 업무 때문에 여름휴가를 5일 동안이나 길게 쓸 수 없어서 연차 2일을 붙여 일요일부터 2박 3일 정선으로 여행을 갔다.

사실 여행 스타일부터 우리 둘이 다르다. 아내는 워낙 힘든 일을 해서 그런지 여행을 가면 여유 있는 일정을 원하지만 나는 한 번 간 이상 최대한 효율적으로 많은 곳을 가는 일정을 만들고 싶어 한다. 이번 여행도 내가 여러 곳을 계획했었고 서둘러 도착해서 해야 할 게 많았지만 나는 아내의 입덧을 너무 간과하고 있었다. 입덧이 얼마나 심한지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원도 정선까지 가는 길이 편하면 얼마나 편하겠나. 언덕이 굽이굽이 나오고 산을 둘러 갔다가 왼쪽으로 꺾었다 오른쪽으로 꺾었다가 일반 사람도 멀미가 안 나면 다행인 코스였다. 아내는 힘들어하는 것을 꾹꾹 눌러서 참으려고 속이 불편해서 잠도 안 오는데 눈을 감고 잠이라도 자려고 한다. 그러다 나는 중간에 갈림길에서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을 잘못 판단해서 급정거를 한 번 했더니 아내가 빨리 내려달라고 한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내려주겠나. 갓길도 없고 어디 급하게 세울 곳도 없는데 내리면 더 위험하다. 급하게 국도로 우회해서 고가도로 아래서 과일을 팔고 있는 트럭 뒤에 차를 세운다.


야외에서 일을 많이 했는지 햇볕에 그을려 피부가 검붉은 과일가게 아저씨가 밝은 얼굴로 우리 차를 반기는 듯했지만, 아내가 상기된 얼굴로 조수석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는 아저씨도 당황했는지 과일을 만지작거린다. 아내를 따라 내린 나는 허리를 펴고 잠깐 하늘을 본다. 강원도 산기슭이라 그런지 공기가 맑고 개울 양쪽으로 높게 오른 산이 오늘따라 푸르다. 하늘은 새파랗고 새하얀 구름은 시원한 산바람을 타고 산 너머에서 내 위로 움직인다.


아내는 개울 따라 만들어진 2차선 도로 옆 갓길로 천천히 걸어간다.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아내가 걸어가는 풍경이 너무 멋있다. 아내는 속이 너무 더부룩하고 힘들어서 나를 원망할 것이다. 이 모든 풍경이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고 힘든 것만 가득할 것 같았다. 나는 지금을 기억하고 싶어 스마트폰에서 카메라를 켠다. 아내의 뒷모습을 찍는데 너무 멋있다. 하지만 아내의 처진 어깨가 안쓰럽고 미안하다.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사진이라도 찍어줘야겠다. 아내를 쫓아가서 앞에서 찍어준다. 왜 눈치도 없게 웃냐는 표정이다. 사진 몇 장을 찍고는 다시 뒤로 와 아내 그림자를 쫓아가며 걸어간다.


한 20분은 걸었을까. 저 멀리 편의점이 보인다. 아내는 편의점에 들어갔다가 아이스크림 1개와 탄산음료 1개를 사서 나온다. 우리는 편의점 파라솔에 나란히 앉아서 산등성이를 바라본다. 나는 미안함에 아무 말도 안 하고 옆에 앉아있었는데 아내가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더니 나에게 준다. 탄산보다 이온 음료가 더 마시고 싶었는데 지금은 주는 거 먹어야겠다. 그래도 아내의 마음이 조금은 풀렸나 보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기분 풀렸으면 같이 되돌아가고 싶었는데 아내의 몸은 그러기엔 힘들어 보인다. 나보고 차 갖고 오라 한다.


다시 차를 가지러 가는 길에 굽이친 개울 위로 하늘을 올려다보니 산 위로 하얀 구름이 펼쳐져 있고 하늘은 너무 파랗다. 한국에서 이렇게 멋있는 풍경을 지금에서야 봤다니. 지금만큼은 다른 대자연이 안 부럽다. 다시 카메라를 들어 이곳저곳을 찍는다. 아,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가야겠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오후 3시경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체크인하고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아내는 옷을 갈아입고 바로 침대에서 잠을 청한다. 느지막이 일어나 저녁을 먹고 주변 산책을 한다. 호텔에서 야외조명을 멋있게 해놔서 근처만 걸어 다녀도 좋았다. 무엇보다 아내가 잠을 자고 일어나서 기분이 풀려서 웃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한시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남은 일정에 계획은 다 없애고 편하게 쉬다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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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임신 9주에 여행을 가겠다고 하는 나는 정말 욕 얻어먹을 결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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