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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을 거닐다 Jun 03. 2020

킬러의 손에서 생명의 손으로!

반려식물이 주는 즐거움

식물 이야기를 쓰다 보니, 예전에(3년 전쯤) 다른 블로그에 썼던 글이 생각났다. 나의 식물 사랑의 출발점이 되었던 때라 다시금 상기해보고 싶어 옮겨본다.




개소식 때 받은 화분 덕분에 우리 상담소가 마음을 거니는 아름답고 편안한 숲을 이루었다.


사실, 처음에는 화분을 받으며, 약간은 난감함이 교차했다. 집에 들여놓는 식물은 들이는 족족 죽이는 '킬러의 손'인 내가 과연 이 식물들을 죽이지 않고 잘 키울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내주신 마음들을 생각해서 죽이지 말고 잘 키워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현재는 책임감이 아닌 환희와 경이를 경험하며, 식물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킬러의 손이 '생명의 손'으로 거듭나고 있다고나 할까. 그 과정에서 몇 가지 느낀 것이 있어 남겨둔다.



 

단상 1. 개별적 존재에 대한 관심


식물을 키우며, 아이나 사람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마다 물을 주는 최적의 주기가 있다. 그러나 같은 종이라도 각각 다른 환경에 놓여 있고, 심지어 같은 환경에 놓여 있는 같은 종일지라도 뿌리를 내린 정도나 가지가 뻗은 정도, 잎사귀의 수가 다르기 때문에 물을 주는 주기를 일률적으로 정할 수 없다. 물 주기에 대해 찾아보면, 공통적인 지침은 ‘흙을 직접 만져봐서 겉흙이 완전히 말랐을 때 물을 주세요.’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몇 세 때 어떤 모습이 되고,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걸 해줘야 하고... 등등 공통의 지침이 있지만, 개별 아이마다 다를 수 있다. 엄마들의 경우, 이 맘 때면 우리 아이가 무엇 무엇을 해야 하는데, 안 하고 있어 걱정이라는 둥, 이 나이면 이런 걸 해줘야 하지 않냐는 질문을 한다. 물론 지침이 되는 가이드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별적 존재 대한 관심과 관찰을 통해, 아이의 현재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다.


심리상담도 마찬가지이다. 사례에 대한 사례개념화를 하고, 가설을 세우고, 내담자가 겪고 있는 문제에 적합한 접근법 또는 이론으로 상담을 진행하지만, 비슷한 문제라도 내담자 별로 다르게 진행하게 된다. 고유한 개별적 존재로서 모두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내담자라 하더라도 항상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서도 안 된다. 봄의 물 주기와 겨울의 물 주기는 달라야 하는 것처럼, 한 내담자에 대한 접근도 때에 따라 조금씩 변주를 해야 한다.


다시 식물로 돌아와, 그래서 나는 출근해서 주기적으로 화분의 흙에 손가락을 넣어본다. 비록 손톱 밑에 흙이 끼어 농부의 손이 되긴 하지만… 잎을 닦아주며, 예쁘다고 쓰담쓰담도 해주고..., 꼬물꼬물 돋아난 새순에게 기특하다고 칭찬도 해준다. 내가 심리상담소를 차린 건지, 화원을 차린 건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단상 2. 접촉의 힘



대엽홍콩 잎사귀 몇 개가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내 마음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속이 상했다. 알아보니, 과습 또는 햇빛 부족일 수 있단다. 물 주기 때문은 아닌 거 같아, 조금 더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옮겨 주었다. 까맣게 된 잎사귀를 따줘야 할지, 그대로 두어야 할지 고민이 되어 분재 카페까지 가입하여 문의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잎을 따주는데, 생 잎사귀를 따면서 마음의 불편함이 일렁였다. 식물이 가진 생명성이 고스란히 손과 마음에 느껴지며 잎을 꺾는 게 쉽지 않았다.


그 순간 접촉 경험이 가진 힘에 대해 깨달음이 왔다.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자연을 좋아해서 많은 식물들을 접하고 좋아했지만, 이전까지 내게 식물은 대상에 불과했다. 그러나 식물과 접촉하며 이제 식물은 감상의 대상이 아닌, 소통하는 생명체이다. 그 과정에서 문득 생명에 대한 사랑에는 분별이 없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해외아동 1명, 국내 아동 1명에게 후원을 해오고 있다. 국내 아동을 후원하기 전 해외아동에게 먼저 후원을 시작했는데, 그걸 보고 엄마는 국내에도 힘든 아이들이 많은데, 모르는 나라의 아동에게 왜 후원을 하냐 하셨다. 동물보호에 기부하는 사람들에게도 힘든 사람들도 많은데, 동물보호에 왜 힘을 쏟느냐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동안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식물을 키우며, 이런 관점의 차이는 접촉 경험의 결여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 외국 사람, 이를 넘어서 인간과 동물(인간 이외의 동물), 그리고 식물에 대해 생명에 대한 사랑, 존중은 분별이나 차별이 없다. 이를 구분 짓고, 경계 짓고, 차별하게 된 것은 근대성의 산물이다. 물론, 죽어가는 짐승보다 죽어가는 인간에게 더 아픔을 느끼고, 타민족보다 같은 민족에게 더 공감하게 되는 것은 일종의 종족보존의 본능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접촉을 하다 보면 생명으로서 이들 간 우열을 가릴 수 없음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그래서 타인에 대한 또는 다른 생명체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과 존중에는 피상적인 호소나 담론보다 접촉 경험이 필수적인 듯하다. 생명존중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가르치기 위해서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에게 접촉 경험을 제공하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단상 3. 사랑의 기술


<사랑의 기술>의 저자 에리히 프롬은 성숙한 사랑의 요건으로 보호(관심), 책임, 존중, 지식을 언급하고 있다. 보호(관심)는 사랑하고 있는 대상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 관심을 의미하며, 책임은 대상의 존재의 요구에 대한 나의 반응을 의미한다. 존중은 있는 그대로 상대를 수용하는 것이며, 지식은 상대에 대한 앎인데, 보호(관심)와 책임도 지식이 수반되지 않으면 맹목적 사랑이 된다. 식물을 키우면서도 이런 사랑의 기술을 경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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