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side of the moon
숨고싶을 때
내가 나를 의심하는 순간이 올 때
한없이 숨고 싶어 졌다.
내가 이해를 잘 못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그리고 이것은 노력으로 해결될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웠다.
(나는 이중 언어로 자랐고 이중언어로 공부를 했기에 독해력, 이해력이 늘 부족했고 지금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슬프고 무기력한 내가 보인다.
이대로 없어지고 싶고 포기하고 싶다.
내가 한 행동과 나의 생각(인지)이 잘못되었다고 느꼈고, 뇌가 고장난 것 같았다.
다들 맞고 내가 잘못알아 들은 것 같은 그런 상황이 불편했다.
내가 말할 땐 안되고 다른 사람이 같은 상황을 설명했을 땐 되는게 불편했다. (내 탓인가 싶었다)
문화와 언어가 달랐던 어린시절의 데자뷰이자 잘못알아들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다가왔다.
그리고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길, 이내 우울한 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분이 다운되면서 서서히 우울의 기운으로 취해가는, ‘아…가고 싶지 않은 세상(우울증)에 왔구나’
(정신을 가다듬고 상황을 다시 생각해 보면 꼭 나만 잘못한 것 같진 않다)
우울의 세계에서 하늘을 쳐다보면
거기에 일상으로 가는 구멍이 있다 (나의 상상)
그 구멍을 통해서 다시 일상으로 가기위해
내가 발버둥 처야 할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발버둥: 노력해야 할 것들 (운동, 명상, 자책, 슬픔, 햇볕의 무한반복)
(하면 안되는 생각들과 삶의 의지가 뒤섞여 나를 괴롭혔다)
‘내 탓이 아니다. 잘 못 알아듣지 않았다. 그들도 잘 한 것 없다.’
이렇게 생각하며 분노하다가
‘잘못했지…’하며 자책하다가를 반복했다.
‘take one at a time, and don’t worry much.’ 라고 유튜브에서 위로해 줬다.
사람보다 유튜브가 고마웠다. 사람 대부분은 나에게 관심도 없고 잘 들어 줄 생각도, 이런 나를 존중해 줄 생각도 없기에
그들에게 위로받고 싶지 않다: Including my husband.
이렇게 내가 숨고 싶었구나, 옛날에 스스로를 지워 버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회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의견 없이 생활 했었던 적이 있었다.그 땐 그렇게 사는 것이 ‘자학’이라는 사실을 몰랐었다.
일터에서 자리에 앉아 한마디 없이 숨만 쉬며 모니터를 보고 자판만 두드렸고
의견이나 생각, 감정의 표현을 꾹 누르고 무언으로 사회생활을 했었다.
그런 날이 많아 질 수록 나를 잃어 갔고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없어진다는 생각은 너무 위험한 일임을 말하고 싶다.
자기 자신을 나처럼 학대하지 않기를,
이 글을 읽는 슬픈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와 같은 슬픔은 아니겠지만
너무 걱정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Don’t worry too much.
하나씩 풀어 나가면 된다. Take one at a time.
- 우울한 세상에서 작성된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