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계절-상실

그리고 위태로움

by 윤슬


유학을 통해 내가 깨달은 한 가지는 ‘가족의 소중함’이다. 나에게 없을 때 그 소중함을 비로소 깨닫듯이 나도 그렇게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독일 호스트 가정과 함께 하면서 늘 '나도 가족이 있는데'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리고 그리워했다. 시간만 되면 한국에 들어갔다 오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가족행사가 있을 때마다 다녀올 수 있는 그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는 비행기표가 비싸 항상 가장 싼 표에 1년에 1번 정도 다녀올 수 있었는데 그렇게 대학교까지 졸업했다: 나의 가족과 함께하는 삶은 15살까지였다.


너무 어린 나이에 떠난 유학은 외로움을 일찍 깨닫게 했다. 심심함이 외로움으로 외로움이 우울함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더 이상 가족이 없다는 '상실'이라는 감정을 경험하면서 그야말로 멘탈붕괴가 되었다. 왜 나의 가족은 상실되었는가? 어머니는 한국에서 유명한 과외선생님이셨고 아버지는 대학교수님이셨는데 내가 유학할 때가 교환교수로 외국에서 근무하시는 해였다. 그래서 한 때 나는 영국에, 어머니는 한국에, 아버지와 동생은 미국에 있었을 때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세계적으로 사는 가족, 이상적인 그런 가족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듯, 한국에 가서 그렇게 다시 찾고 싶었던 가족은 공부를 다 하고 돌아와 보니 파탄이 나 있었다. 내 꿈은 가족과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는 거였는데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혼이 나에게 가져온 상실감은 이로 표현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욕심으로, 나의 욕심으로 떠난 유학은 나와 가족(친척포함) 간의 문화차이를 만들어 냈다. 나의 문화와 한국 문화가 달라서 가족들에게 이방인 취급, 공부시켜 봤자 소용없다는 소리를 들으며 좋지 않은 관계로 지내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서로가 오해였다는 걸 깨닫고 잘 지내지만 그 차이를 극복하는데 3년 이상의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엄마 입장에서는 공부를 시켰는데 아이가 외국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니 서운할 수 있겠다 싶다. 아이 입장에서는 공부는 내가 했고 또 열심히 하려고 학교에서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말도 잘 듣고 그랬는데 갑자기 문화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게 잘못되었다고 질타를 받으니 황당할 뿐이다. 정서적으로 이 시간을 이겨내는 것이 매우 힘들었고 많이 슬펐다. 이모 삼촌들조차도 내가 이기적이라고 했다. 우리 가족의 상실도 마음이 아픈데 친척의 질타까지 받으니 표현할 수 없는 우울과 슬픔 속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 우리 가족은(나를 포함) 존중과 배려가 그리고 소통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나는 내가 가정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랐다. 다시 찾고 싶었다. 나의 가족을. 그런데 나와 가족이 될 사람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젊었을 때 내 주변 남자들은 내가 유학생이어서 싫었고, 영어를 잘해서 싫었고, 잘난 체 하는 것 같아서 싫었고, 안 예뻐서 싫었고 뭐 다양한 이유에서 싫었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은 내가 그들이 싫었다. 그러다 지금의 신랑을 만났다. 아주 작은 가족을 만들게 되어 기뻤다. 개방적이고 재치 있었던 그는 덩치가 너무 커서 사람들이 무서워했다. 나도 처음에는 무서웠다. 외국에서 산 것도 아닌데 생각하는 관점이 나와 비슷해서 대화가 잘 통했다. 자녀가 있어도 좋았겠지만 나의 우울증 때문에 아이는 갖지 않기로 했다. 세상에 태어난 것이 괴로운 사람이 아기를 낳으면 안 되니까. 그래도 가끔 친구 아가를 보면 낳고 싶다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다.


본론으로 돌아와 조기유학이나 자녀를 국제학교에 보내겠다는 아줌마를 만나면 가족이 서로 떨어져 사는 걸 추천하지 않는 편이다. 아이가 외국인처럼 생각하게 될 것이고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아이가 한국에 돌아와서 취직을 한다면 국내 대학의 동기, 선후배가 있는 편이 사회생활을 하기 더 좋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기러기 아빠를 만드는 것(또는 그 반대), 그게 사랑하는 사람끼리 할 수 있는 일인가? 결혼생활은 줄타기와 같아서 늘 위태롭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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