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족들도, 주변의 지인들도, 의아하게 여길 수밖에 없게, 느닷없이 새 가족을 꾸렸다.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은커녕, 난 이전까지 20대 내내 연애라는 것도 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이다. 연애, 하니까 생각나는 우스꽝스런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미팅(? 난 지금도 미팅과 소개팅의 차이를 잘 모른다)이 성사된 곳은 신촌의 독수리다방이었다. 지금도 독수리다방의 '다방 커피'와 '모닝빵'이 기억난다. 독수리다방 옆 대학에 다니던 고등학교 동창이 주선한 자리였다. 2 대 2 미팅이었는데, 나와 이문동에 있는 대학에 다니던 고등학교 동창이 함께 나갔다. 독수리다방 앞에 어정쩡하게 서서, 그날 만나게 될 '여대생'들을 기다리던 순간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환기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난 신입생 때 무척 늙수그레하게 보였고, 그로 인해 처음 보는 사람에게 늘 '복학생' 취급을 받곤 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문동 대학의 그 녀석은 나보다 더 노안이었고, 목소리는 더더욱 나이 든 아저씨였다. 이제, 그렇듯, 갓 스무 살 신입생 신분이지만, 외양으로는 국방의 의무를 이미 충실히 이행하고 캠퍼스로 돌아온 복학생 얼굴을 한 두 사내아이가 독수리다방 앞에 서 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자리를 주선한 독수리다방 대학 친구가 신촌로터리 방향 저쪽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기 온다. 얘들아~ 여기야~" 내가 시선을 그리 돌린다. 아이고, 그이들은 여기서 기다리는 '짝퉁 복학생'과 정반대 쪽에 위치한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아직도 고등학생 같은, 그런 사람들이다. 아뿔싸, 그런데, 여기서 난처한 일이 생겼다. 이문동 녀석이 독수리다방 녀석과 잠깐 수다를 떠는 사이, 내 시선과 그이들의 시선이 마주친다. 저런, 웃는다. 그런데, 그 웃음이, 약간의 실소다. 말 그대로, 난처해하는 웃음이다. 쓸데없는 데 눈치가 빠른 편이었던 나는, 웃음의 의미를 바로 알아차린다.
독수리다방에서 다방 커피와 모닝빵을 사이에 두고 앉은 우리의 분위기는 무척 어색했다.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간단 말인가. 이렇듯, 상대가 '망한 미팅'으로 결론 내린 자리를 슬기롭게 파하는 방법을, 난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건, 내 생애 처음 있는, 또래 여성과의 직접적인 만남이었기 때문이다.(그러니까, '화'와 편지를 주고받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던 것이다.) 이문동 녀석은 눈치 없게도, 얼른 상대를 정해 자리를 옮겨, 1 대 1 만남을 가지고 싶어 했다. 그 바람을 자꾸만 노골적으로 드러냈는데, 상대가 여간 난처해하는 것이 아니다. 알지 않는가. 웃고 있긴 한데, 웃는 게 아닌, 완곡하게 다음 기회를 보자 하는데, 실은 '이걸로 안녕~ 우리 얼른 이 자리를 끝내자~' 하는, 그런 어색한 분위기.
난 이문동 녀석에게 "뭘 따로 놀아, 따로 놀긴" 하며 면박을 주었다. 그리고, 태생적으로, 어쩔 수 없이 노안인 우리를 이토록 난처해하는, 고등학생 같은 그 아이들이 조금 얄미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성숙한 사람이었다면,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겠지만, 난 전혀 성숙하지 않았고, 생애 첫 미팅 자리가 그토록 부끄러워지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우리, 그러면, 날도 저물어 가는데, 나가서 맥주나 한 잔씩 하고 헤어져요." 그래도, 나름 통 크게 굴었다. 당시 내 술자리에 '맥주'란 없었기 때문이다. 맥주는 '비싼 술'이다. 맥줏집에서, 난, 세상이 변화하고 있으며, 우리가 이제는 '여성주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토론해봐야 할 때라고 일성을 내뱉었다. 1990년대 대학가 선술집에서라면, 당연히 거론될 수 있는 다양한 주제 중 하나였기에, 난 거침없이, 술기운을 빌려 여성의 지위와 여성주의의 향방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자고 떠들어댔다. 정말, 재수 없는 놈이었던 거다. 놀란 토끼눈이 되어, '망한' 정도가 아니라 '재앙'이 된 미팅에 어쩔 줄 몰라하던 그 아이들의 표정이 생각난다. 파하면서, 그이들이 '웃으며' 말한다. "아유, 재미있었어요. 이런 미팅은 처음이네요. 호호~"
난, 그날 이후, 미팅이고 소개팅이고, 그게 뭐가 됐든, 이성을 만나는 자리를 만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지질한' 놈이었다. 지질한 놈이니, 자연스러운 연애도 불가능했다. 그러니까, 캠퍼스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며 누군가를 만나 가까워지고, 그러다가 연애도 하고, 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은 거다. 그리하여, 스무 살이 되면 아직 '아무 데도 없는 애인을 만나고 싶다'던 나의 바람은, 전혀, 이루어질 기미 없이, 숨죽인 채,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런 나였기에, 졸업을 코앞에 두고, 느닷없이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대학 동기들은(정확히는 대학 시절 술친구들) 내게 말했다. "야, 이 쓰레기 같은 놈아. 너 같은 쓰레기가 결혼을 한다고?" 그렇게 말할 법했다. 내가 그이들과 한 일이라곤, 정말, 말 그대로 술을 마시며 기형도가 어쩌고 저쩌고, 이성복이 어쩌고 저쩌고, 시가 어쩌고 저쩌고, 쓸데없는 소리나 지껄인 게 다였기 때문이다. 그 뒤, 그이들은 '쓰레기'인 내가 결혼한 것에 충격을 받았는지, 몇 년 사이에 줄줄이 결혼을 했다. 그 뒤,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지금의 아내가 된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난 세 번 정도 누군가를 '짝사랑'했던 것 같다. 실은, 사랑도 아니었다. 그게 뭐가 사랑인가. 그건 기껏해야 '정념' 같은 거다. 난 대체로 '짝사랑'이라는 말이, 논리적으로 하자가 있는, 이상한 단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랑'이란, 무릇, 관계의 상호작용 속에서, 서로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실질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서로가 존재하는 방식을 느끼고, 서로가 다른 존재임을 인지하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사랑이란 그런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짝사랑'은, 참, 괴이한 말인 셈이다. 아무튼, 난, 그 괴이하기 짝이 없는 짝사랑의 마음을 세 번 정도 겪었다. 그중 한 친구는, 내 바로 아래 학번인, 나와 한 살 차이인, '오 모'라는 친구였다. 이번에 파주 집 짐 정리를 하면서, 그 아이가 군 복무 중인 내게 보낸 위문편지 하나를 발견했다. 그러니까, 이 뜬금없고 희한한 에세이는, 사실 그 편지 때문에 시작된 것이다.
술친구들에게 '쓰레기'라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느닷없이 결혼하는 바람에 원가족과 함께 지내던 시절의 사적인 물건들을 일일이 챙겨 나오지 못했다. 편지들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그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다가, 이번에 '발견'을 한 것이다. '오 모'는 그렇게 썼다. 내가 대학 동기에게 보낸 편지를 봤는데, 너무 난해하게 써서, 무릇 편지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기 위해 위문편지를 보낸다고. 사실, 입대 전에 난 그이를 조금 좋아하게 되었었다. 여름 농활에서였다. 열흘간의 농활 기간, 하루 일과를 마친 어느 저녁, 그이는 우리들의 허름한 숙소 앞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내게 <O Tannenbaum>(번안곡인 '오, 소나무야'의 원곡)을 불러주었고, 모든 농활 일정이 끝난 후 서울로 돌아오는 차편에서는 옆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어깨에 기대 잠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난, 그해 겨울 군에 입대했고, 그걸로 끝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이가 좋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자마자, 난 그이를 피하기 시작했다. 어둔 내 마음을 들키기 싫었고, 그이가 좋게 보아준 나는 내가 아니라고 여겼다. 대개 그런 식이었다. 물론, 첫 짝사랑 상대는 나보다 두 살 많은 데다가 이미 누군가와 연애 중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오 모'도, 그다음에 짝사랑하게 된 누구도 마찬가지였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면, 회피하는 거다. 못난 녀석이었다. 그렇게 못난 녀석이, 졸업 직전, 느닷없이 누군가와 짧은 연애를 하고, 벼락같은 결혼을 한 건 참으로 괴이한 일이었다. 어쩌면, 졸업 후 계속해서 원가족들과 살아야 하는 것이, 그 삶을 이어가는 것이 너무나 싫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듯, 일종의 도피로서 결혼을 하게 되면,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어려움이 많았고, 많은 파도를 넘어왔다.
파주에서 편지를 발견하곤, 놀라운 마음에 읽어 내려가는 나를 보고 아내가 핀잔을 준다. "좋아?" 그러고는, 조금 뒤 전화가 온 아이에게 일러바친다. "야, 너네 아빠 지금, 옛날 여자친구 편지 보면서 되게 좋아하고 있다." 사실이 아니다. '오 모'는 내 여자친구가 아니었다. 그런 순간은, 단 일 초도 발생한 적이 없다. 다만, 그이의 옛 편지를 읽다 보니, 일그러졌던 20대 어느 날들의 풍경이 아른거리면서, 생각에 잠기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때 난, 집요하게 우울에 매달려 있었다. 마치 내가 우울한 존재가 아니면,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듯 굴었다. 가슴속에 아무리 뜨거운 돌덩이가 있더라도, 우물 깊은 곳에 아무리 어둔 것이 고여 있더라도, 조금은 사는 것처럼 살아도 좋았을 것이다. 구태여, 그렇게, 우울을 부여잡고 있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오 모'는 좋은 아이였다. 굳이 연애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건네며 마음을 나누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내가 그렇게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젊은 나날을 조금은 더 괜찮게 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독수리다방 대참사의 시발점인, 나의 노안은, 30대 후반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실제로 나이가 제법 들면서부터는 더 이상 늙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40대 때는 내내,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좋은 일이 생긴 건 아니다. 다만, 흥미롭게도, 그 시점부터 조금씩 '막내 티'가 난다는 소리도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최근 이 글공간의 이웃이 내게 '막내 티'를 낸다고 했을 때, 그래, 이제는 완전히 자리를 잡았구나, 하며 웃었다. 내가 노안이었을 때, 난 늘 '막내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건 얼굴 때문이 아니었다. 나의 말과 행동 때문이었다. 우습게도, 난 그때, 막내 같지 않다는 말을 듣는 것에 안도했다. 원가족 안에서 나의 지정학적 위치와 상황은, 막내여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습게도, 그들과 거리를 두고, 관계를 멀리하면서부터, 사실상 홀로 가족인 것처럼 지내면서부터, 난 홀로 막내 같아졌다.
파주 이야기를 풀어놓다 보니, 너무 무거워져서, 좀 가벼운 이야기를 하나 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이게 가벼운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20대 내내, 결혼 상대를 만나기 전까지, 연애 한 번 못 해본 게 밝고 가벼운 이야기인가? 하긴, 아닐 건 또 뭐 있겠나. 20대 내내 연애를 하도 많이 해서, 이제 와 돌아보면 누가 누구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도 않는다는 것보다는 가벼운 이야기, 아니겠는가. 그래, 그렇게라도 스스로를 위로하자. 가벼운 마음으로. 사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독수리다방의 모닝 빵은 따뜻하고 맛있었잖아.
이곳에는, 오늘도 비가 내린다. 내일까지 온단다. 이 기나긴 비가, 가을의 등허리를 후려갈긴다. 겨울이 멀리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