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형을 기억하며
형이 저세상으로 떠난 해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책을 편집했다. 장례를 치른지 불과 두 달 뒤 이 책을 편집하기 시작해서 그해 봄에 출간했다. 책을 만드는 내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글을 손보다가 다른 직원들이 볼까 봐 사무실 밖 테라스로 나가 눈물을 훔치곤 했다.
이 글은 당시 책을 출간하자마자 출판사 웹 채널에 올렸던 '편집자 후기'다. 후기 안의 내 조카들은 이제 훌쩍 자라, 한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고 한 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간다. 당시 아직 병석에 누워 계셨던 어머니는 이제 고인이 되었다. 두 영혼이 만났을까? 난 만났으리라 믿는다. 그해의 기록을 여기 남겨 둔다. 이제는 남은 자들에게 '죽음을 향해 가며 잘 살아내는 일'이 숙제처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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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_ 죽음에 관한 책이라니, 만들기 부담스러웠다
지근거리에서 죽음을 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다. 함께 살던 외할머니가 당뇨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 슬펐나? 잘 모르겠다. 할머니를 화장하고 돌아오는 길에 먹은 육개장이 참 맛있었다는 기억만 난다. 늘 외할머니를 떠올리면 그 육개장이 생각난다. 그리고 올해 1월, 형이 저세상으로 갔다. 간경화였다. 형수에게서 전화를 받은 것이 1월 9일 저녁 7시경이다. 그 며칠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부엌 형광등 덮개를 청소하려고 떼어내 화장실로 갔는데 별 충격을 주지 않았는데도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미신 같은 걸 별로 믿는 편은 아니지만, 어머니한테 무슨 일이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어머니는 간경화에 당뇨에 치매 증상을 갖고 계시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전갈이 온 것이다.
구리 한양대병원에 도착했을 때 형은 ‘소생실’이라는 곳에 누워 있었다.(왠지 참 섬뜩한 말이다.) 형은 말 그대로 거죽이 뼈에 닿을 만큼 삐쩍 말라 있었고, 백지장처럼 하얀 상태였다. 당직 레지던트에게서 출혈이 심해 몸의 피가 3분의 1가량 빠져나간 상태라는 설명을 들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의식이 오락가락했고 눈을 뜨지 못했다. 형이 소생실에서 내뱉은 말(결과적으로는 형의 육성으로 들은 마지막 말이 되었지만)은 ‘냉장고’였다. 혼수상태에서 뭔가 다른 것을 보고 있는 게 분명했는데, 나는 두고두고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뿌리를 잃은 채소, 목숨을 잃은 동물의 살, 그런 것들이 들어가 있는 곳. 냉장고는 어차피 죽은 목숨들이 부패하지 않게 잠시 보관해 두는 곳이다. 그런 단어를 내뱉은 것이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물론 의식도 없는 상태에서 어떤 의미를 두고 그 말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형은 좀 추웠는지도 모른다.
책을 만드는 내내 형 생각이 났다. 물론 이 책은 죽음 자체를 다루는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죽기까지의 과정, 죽기 전까지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책이다.
# 2 _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당직 레지던트와 간호사들이 소생실을 분주하게 드나들었다. 물끄러미 형의 발바닥을 쳐다본다. 하얀 발 너머로 하혈한 피로 얼룩진 시트가 보인다. 당직 의사는 내게 계속해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소생실에서 나온 형은 불과 한두 시간 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퉁퉁 부어 있다. 이 책을 만들면서 알게 된 것인데, 아마도 형에게 투여하는 갖가지 액체들이 몸에 제대로 흡수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의사 말로는 혈액이 3분의 1 정도 빠져나가 피가 모자라지면서 신체가 뇌와 심장에 남은 피를 집중시켰을 것이고, 이에 따라 다른 장기들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을 거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분명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작은, 혹은 터무니없는 희망을 가지기도 한다.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겠다고 확인하는 서류에 서명하는 일이었다. 이 한 번의 사인으로 형은 이제 심장이 정지할 경우 되돌아올 길이 없게 된다. 형수가 울고 있었고, 펜을 잡은 손이 떨렸다. 형은 중환자실에 말 그대로 시체처럼 누워 있는 열다섯 명 남짓한 환자들 중에 가장 젊은 사람이었다. 살아날 가망이 없는 사람들. 간호사들이 이 침대에서 저 침대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들 중 누가 가장 먼저 이곳을 나가게 될까? 그날만 해도 나는 그게 형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며칠, 아니 10일, 아니 그 이상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형은 이틀을 채 넘기지 못했다. 1월 11일 일요일 아침 6시, 간호사가 나를 급히 찾았고, 형이 다시 다량의 출혈을 일으켜 심정지 상태가 됐음을 알렸다. 형은 그렇게 갔다. 나이 마흔여덟 살이었다.
소생실로 오기 전, 형은 집에 혼자 있었다. 아침에 극심한 구토를 일으켰고, 오후에는 하혈을 하기 시작했다. 겁이 났을 것이다. 형수에게 전화를 걸어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한다. 무서웠을 것이다. 형이 집에서 홀로 쓰러지기 일주일 전, 나는 형과 마지막이 된 통화를 했다. 새해 인사 겸 안부를 묻는 전화였다. 그게 유언이 될 줄은 몰랐다. 형의 목소리는 이미 사그라지고 있는 환자의 낮고 갈라진 소리였다. “그래, 네가 주말마다 아버지, 어머니 찾아뵙고 있다는 얘기 들었다. 고맙다. 내 걱정은 말고 부모님 좀 잘 부탁한다.”
결과적으로 유언이 된 마지막 통화보다 두 달 전, 나는 삼육병원 병실에서 형을 만났다. 복수가 차서 배가 부풀어 있었지만, 아직은 정상적인 얼굴, 정상적인 목소리였고, 특유의 미소도 잃지 않았다.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나을 수 있다고 말하는 내게 형이 미소 지으며 말한다. “그러게. 얼른 낫고 싶다.” 그 후 형을 다시 만난 건 소생실에서였고, 형의 장례식을 치르기까지 내내 그게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나는 어머니처럼 형이 오래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음번에 한번 만나러 가지,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말기 질환에 걸려, 혹은 극심한 노환으로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만의 삶의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어 한다. 그들이 원하는 건 단순한 생명 연장이 아니다. 그저 세상과 사람들과 소통하며 온기를 느끼고 싶어 할 뿐이다. 형의 마지막은 어떤 것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 3 _ 어떻게 죽을 것인가, 혹은 어떻게 살 것인가
형을 보내고 난 다음 주, 형네 집, 아니 형수의 집으로 갔다. 흔적이 남아 있다. 간경화에 좋은 음식, 스스로를 다잡는 기도문, 눈에 익은 형의 필체다. 저기 마루 어디쯤에서 쓰러졌을 것이고, 구급대원들이 들이닥쳤을 게다. 조카들이 내게 뛰어든다. 여섯 살 난 딸아이, 그리고 세 살 난 사내아이. “삼촌은 아빠랑 똑같이 생겼어.”라고 말한다. 형의 어렸을 적 모습을 쏙 빼닮은 이 사내 녀석. 형이 투병하는 동안 두어 달 거의 이모 집에 있다시피 했던 이 녀석. 병원 응급실 앞 대기실에서 나를 만났을 때 “아빠?”라고 말했다.
형의 방 책꽂이 한쪽에 대학 졸업 앨범이 눈에 들어온다. 낯이 익은 젊은 청년 하나가 입을 앙다문 채 찍은 사진. 1991년 대학을 졸업한 후 이때까지 형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때로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도 있고, 또 불행한 순간도 있었겠지. 하지만 잘 모르겠다. 다만 형이 죽음에 이른 지금, 결국 내가 돌아보게 되는 건 형의 삶일 뿐이라는 것이다. 죽음은 어쩔 수가 없다. 형에게 왔듯 그렇게 그냥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지 않아 내게도 올 게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답게 잘 죽어 간다는 건 사실 마지막 순간을 가치 있게 잘 살아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어떻게 죽어 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