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이들과의 느슨한 연대,

아직은 조금 더 독백을 해도, 이야기를 써도 괜찮겠지

by 식목제

이 공간에 들어와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게 2월 7일이다. 그러니까 오늘까지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우연히도, 굳이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지만, 백 번째 이야기다. 적잖은 이야기를 한 것 같지만, 실은 결국 같은 실타래에 얽힌 것들이다. 이 모든 이야기들을 묶어서 줄인다면, 그저 한 페이지 정도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가끔은, 이 이야기들을 굳이 써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내가 이 이야기들을 잘 모아서 기록으로 남기게 될까. 좋은 생각 같지는 않다. 난, 내가 어머니의 오래된 일기를 발견하듯, 내 아이가 어떤 식으로든(그게 종이라는 매체로 출력된 것이든,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것이든, 지금처럼 온라인에 보관된 것이든) 이 이야기를 발견하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말했듯이, 난, 1910년 이후 시작된 이 기억의 콜라주들을 단 한 조각도 아이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다. 그러니, 이 이야기들은 내 생각과 마음과 기억과 손끝을 떠나면서부터, 머지않아 폐기될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쓰지 않는 게 좋지 않았을까 자문해볼 수도 있다. 혹시라도, 아이가 웹에서 우연히 이 글들을 발견하게 된다면 어찌할 것인가.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쓰는 이야기들은, 아이가 검색어를 입력한 뒤 나열되는 웹 페이지 목록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검색할 만한 주제와는 너무 먼 이야기들이다. 실제로, 일반적인 검색어를 통해 내 글에 들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이 공간 안에서도 내 글을 읽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이 이야기들을 아이가 읽을까 봐 걱정하진 않는다. 아이가 나와 다른 사람으로 자라도록, 나름 애썼다. 물론 결국은 성장 과정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준 적 있지만, 그래도 내 원가지들과 연결된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 또한, 내 원가지들과 연결돼 내가 품은 어둠을 드러내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이상한 강박이 있어서,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매주 두세 개씩 이야기를 쓰고 드나들면서도, 그다지 많은 이웃을 맺지 못했다. 이상한 강박이란, 누군가와 이웃을 맺고 말을 건네려면, 가급적 그이의 글을 다 읽고 싶다는, 혹은 그리해야 한다는 강박이다. 상대의 서사를 비교적 입체적으로 이해한 다음, 새로 올라온 글도 읽고, 말도 건네고 싶은 것이다. 그건, 어쩌면, 지나치리만치 원고를 뜯어보던 편집자 시절의 강박과도 맞닿아 있는지 모른다. 그때 아내는 입버릇처럼 내게 말하곤 했다. “가끔은 좀 대강 보면 안 돼?” 사실은 대강 봐도 된다. 편집자가 목숨이라도 걸 것처럼 원고를 뜯어보던 시절은 지났다. 시중에 유통되는 책들 중에는, 내용은 고사하고, 문장의 호응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책들도 허다하고, 그렇다고 해서 책이 안 팔리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강박이 맞다.


그 와중에도 좋은 이웃을 만났다. 고백하자면, 그이들 덕분에 독백과도 같은 이야기를 조금 더 풀어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용기를 얻은 게 맞다. 사실을 말하자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연으로 치자면, 가슴속에 사연 하나 품지 않은 사람 없고, 그런 이들이 모두 독백과도 같은 이야기를 풀어놓지는 않는다. 대부분은, 그저 가슴속에 묻고 산다. 상처와 고통은 가슴속에 묻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것이다. 어쩌면, 진짜 강하고 용기 있는 사람들은, 바로 그들일 것이다. 물론,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던, 소심한 겁쟁이인 내가, 그들처럼 강단 있게 삶을 살아가고, 우물 속 이야기를 단 한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고 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뭐,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진 않았다. 아마도, 이곳에서의 글쓰기가, 내 처음이자 마지막 독백이 될 것이다.


아내가 그랬다. '존재'니 '시간'이니 하며 내가 떠들어대는 것들, 내가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과 만나 살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안됐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그런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난, 그 말에, 길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답했다. 그런 점이 통하는, 잘 맞는 사람을 만났다 하더라도, 그이와 나는 결국, 아이를 키우고, 생존을 해내고, 현실 속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일들과 씨름했을 거라고. 그이와 내가 존재를 논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그러니, 실은 가족으로서 함께하는 사람이란, 전우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생존을 건 싸움을 함께 벌이는 전우가, 철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사유를 함께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어쨌거나, 여기서 만난 이웃들 덕분에, 꽤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가끔은 아주 가깝게 느껴져, 있지도 않은 전화번호를 찾은 적도 있다.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고 싶어진 것이다. 그들 덕분에, 독백이 독백으로 끝나지 않고, 서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마당이 되고, 마음을 나누며 공명하는 자장이 되었다. 이 느슨한 연대가, 오래 계속되었으면 좋겠지만, 늘 그렇듯, 사는 일이란 알 수 없다. 별 기대 없이 살아온 삶이라서인지, 기대하는 일에도 겁을 낸다. 겁쟁이라는 걸 숨기고 싶어질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가워져선, 말도 없이 뒤돌아서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조금은 더 괜찮겠거니, 한다. 그래도 될 것이다.




백 번째 이야기를 쓰면서, 그저 그 소회를 좀 남기고 싶었다. 백 번째를 위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이다. 다음에는, '철 아닌 때에 피는 꽃은 얼마나 처연한가'를 화두로 이야기를 쓰고 싶다. 이웃이 건넨 이 말이, 문득, 세차게 내 영혼의 그림자를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아, 그건, 너무 처연한 말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장은 쓰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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