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된 관계들을 생각하며

작고 희미한 불씨를 지켜본다

by 식목제

이 글공간을 운영하는 플랫폼 기업의 모든 시스템이 셧다운되었다. 그와 관련된 비판이나 문제점 지적은 하지 않으련다. 앞으로 수많은 지면과 온라인 뉴스에 오르내리며 욕을 먹을 테니 나까지 그 대열에 합류하진 말자. 다만, 시스템 접근이 불가능해진 후 꽤 오랜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 하나를 던지게 되었다. '이 공간에 저장해둔 나의 글이 복구 불가능한 상태로 사라져도 괜찮은가?' 난 이곳에 올린 글들의 원본 파일이 따로 있지 않고, 백업 파일도 만들지 않는다. 발행된 글들이 원본이자 최종본이다. 그러니 만약 복구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안녕'인 셈이다. 글 자체로 본다면, 사라져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오래 보존해두어야 할 만큼 가치 있는 글들도 아니다. 물론 봄이 오기 전부터 다시 겨울에 다다르는 시점까지 쓴 100여 개 글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면 좀 허탈하기는 할 것이다. 이후, 어느 공간에라도 다시 글을 쓰는 일이 머뭇거려질지 모른다. 어차피 글 쓰는 게 내 '일'도 아닌 터라 맥이 빠질 것이다. 그래도, 그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다. 20년 동안 남의 글을 숱하게 책으로 만들면서도, 내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 글쓰기가 중단된다 한들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글 자체가 아니라, 이곳에 쓴 글을 둘러싸고 나눈 마음을 떠올리니 괜찮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잘못 살다 보니, 세상에 연결된 인연들이 별로 없고, 마음을 나눌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지난 2월, 일기 같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구체적으로 바라는 다른 무언가가 없었다. 그저 마음을 쓰고 싶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마음을 나누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와~ 글 정말 좋네요~ 짝짝짝" 하는 따위의 응원가를 부르며 사교 행위를 하고 싶은 욕구도 없었다. 만약, 내가 누군가 다른 사람의 공간을 기웃거리고, 그이의 글을 읽는다면, 그건 또, 습관처럼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일 것이다. 계획이라기보다, 막연한 생각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누군가를 만났다(고 믿는다). 그이들의 글을 읽으며, 그이들에게 말을 건네며, 그이들이 나의 이야기를 읽고 건네는 말을 들으며, 마음을 나누었다(고 믿는다). 시스템이 복구되지 않고, 모든 것이 사라지면, 그이들과의 연결이 느닷없이 단절되면, 꽤 오랫동안 어쩔 줄 몰라하며 마음이 헛헛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까닭에, 조금은 초조한 마음으로, 시스템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삶에서 수도 없이 단절된 관계들을 생각하며, 문득 죽음을 떠올려보게도 된다. 순식간에, 살아 있는 존재로서 시스템이 셧다운되고 삶과 연결된 모든 것들이 끊기는 상태. 살아 있는 존재임을 확증했던 모든 것들이 암전되고 완전한 어둠 속으로 무화되는 상태. 호모 사피엔스가 오랜 역사 속에서 대체로 무리 짓고, 관계의 연결망을 통해 생존을 담보하는 존재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단절은 작은 죽음 혹은 죽음의 유사체험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해체된 가족, 혹은 상처받은 영혼들이 만나 자기파괴적인 서사를 만들어내는 가족 안에서 관계라는 것을 시작한 사람들, 그리하여 사실상 고립되고 단절된 영혼으로 산 사람들이 (누군가 자기 목에 칼을 들이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생존에 위협을 느끼며 불안감에 떠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난, 단절된 채 살면서도, 생존에 위협을 느끼지는 않았다. 다만, 존재의 무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고, 세계가, 우주가 존재하는 데는 사실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을 집요하게 환기했다. 그리하여, 어쩌면 나는, 인간과, 세상과, 멀어지는 쪽으로 삶을 살아온 듯도 하다.


얼마 전, 지금 일하는 조직에서 시행하는 사업 설명회에 젊은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참석했다. 주로 테이블 배치, 다과 준비, 프로그램 사진 촬영 등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나는, 이날도 준비를 마치고 설명회 참석 주민들을 맞이했다. 아이를 보니, 뭔가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사방으로 굴릴 수 있는 바퀴가 달린 의자 대신 푹신한 소형 소파로 바꾸어 주었다. 그다음은 간식이다. 이런 어른들의 자리에서 아이가 할 일은 없다. 심심할 것이다. 간식 몇 가지와 물을 챙겨 아이 앞 테이블에 갖다주었다. 그러고 나서 한참 시간이 지났다. 이제 설명회가 끝날 시간이 다 되어간다. 사진 촬영을 하며 행사장 뒤쪽에서 서성거리다가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한테 뭔가 할 말이 있는 것만 같은 눈빛이다. 가만히 아이 눈을 응시한 채 “응?” 하고 묻는다. 아이가 고사리손을 꼭 쥔 채 내민다. 천천히 고개를 숙여 들여다본다. 아이가 손바닥을 활짝 펼치니, 예쁜 조개껍데기가 얼굴을 내민다. 의자, 과자, 물을 챙겨준 것에 대한 답례다. 활짝 웃어 보이며(물론 마스크를 쓰고 있어 보이진 않았겠지만) 아이에게 배꼽 인사를 건넸다.


아직 우주로 영혼이 열려 있는, 아직 인간의 독에 깊이 감염되지 않은, 아이는, 그렇게 한다. 마음을 건네면, 마음으로 화답한다. 미소를 건네면, 미소로 화답한다. 나도, 언젠가, 아주 오래전, 그런 적이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난 대체로, 나 자신을 포함해, 인간이란 것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있는 그대로 마음을 내어준 적도, 받아들인 적도 없는 듯하다. 젊어서,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것은, 대화의 장에서 상대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경청한 것은, 신뢰를 쌓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타자를 조금이라도 더 정확히 이해하려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이해도가 높아졌다 해서 신뢰감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미소를 있는 그대로 따뜻하게 받아들인 적 없었고, 있는 그대로 따뜻한 마음에 미소를 건넨 적 없었다. 나의 웃음은, 대개, 언젠가 말했듯, 상대에게 적의가 없음을 드러내는 사회적인 표정일 뿐이었다. 아이의 조개껍데기를 받고선, 공연히 마음이 아렸다. 그건, 영하 20도로 곤두박질치는 동토에서, 내 몸은커녕 손가락 하나조차 녹일 수 없는, 작고 희미한 불씨를 지켜보는 것과 같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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