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니, 오래된 시인 기형도가 생각난다. 기형도가 이른 봄에 죽었기 때문이다(3월 7일에 죽었다). 봄은 이상하리만치 죽음이 도드라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말하고 보니 ‘이상하리만치’는 아닌 듯하다. 생명이 가장 맹렬하게 얼굴을 내미는 봄에 죽음이 도드라지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난 젊은 시절, 꽃피는 봄을 기다리다가도, 막상 꽃피는 시절이 오면 우울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기형도가 봄과 관련해 쓴 시들은 아프다. 하긴 그의 시들 중 아프지 않은 것은 없었다. 대학에 막 들어갔을 때, 우리는 너도나도 그의 시에 대해, 그의 시에 담긴 절망과 죽음에 대해 말하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젊은 우리는 시를 읽으며, 감정의 호사를 누리며, 저마다 절망의 무게를 재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이가 쓴 시들은 사실 그가 살면서 온몸으로 견뎌낸 절망 그 자체였다.
봄에, 절망의 봄에, 누이를 처절하게 보낸 봄에 그이는 ‘봄은 살아 있지 않은 것은 묻지 않는다’고 토해냈다.
누이여
또다시 은비늘 더미를 일으켜세우며
시간이 빠르게 이동하였다
어느 날의 잔잔한 어둠이
이파리 하나 피우지 못한 너의 생애를
소리없이 꺾어갔던 그 투명한
기억을 향하여 봄이 왔다
살아 있는 나는 세월을 모른다
네가 가져간 시간과 버리고 간
시간들의 얽힌 영토 속에서
한 뼘의 폭풍도 없이 나는 고요했다
다만 햇덩이 이글거리는 벌판을
맨발로 산보할 때
어김없이 시간은 솟구치며 떨어져
이슬 턴 풀잎새로 엉겅퀴 바늘을
살라주었다
봄은 살아 있지 않은 것은 묻지 않는다
떠다니는 내 기억의 얼음장마다
부르지 않아도 뜨거운 안개가 쌓일 뿐이다
잠글 수 없는 것이 어디 시간뿐이랴
아아, 하나의 작은 죽음이 얼마나 큰 죽음들을 거느리는가
나리 나리 개나리
네가 두드릴 곳 하나 없는 거리
봄은 또다시 접혔던 꽃술을 펴고
찬물로 눈을 헹구며 유령처럼 나는 꽃을 꺾는다
_ 기형도, <나리 나리 개나리>
누이가 가져간 시간과 버리고 간 시간의 영토 속에서 그이는 한 뼘의 폭풍도 없이 고요하지만, 잠글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살아 있지 않은 것은 묻지 않는 그 봄에, 이제 누이는 두드릴 곳 하나 없는 거리에서, 찬물로 눈을 헹구며 유령처럼 꽃을 꺾는다. 그 절망과 슬픔의 깊이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겠는가.
내가 기형도의 시를 처음 접한 건 스무 살 때였다. 같은 방을 쓰던 형이 자기 책상 위에 놓아두고 나간 그이의 시집을 발견하고 펼쳐본 것이 처음이었다. 난 형이 그 시집을 일부러 두고 나간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봤으면 해서 두고 나갔다는 것을.
형은 자꾸만 절망의 무게를 재고 있었고, 그걸 내게 보여주고 싶어 했다. 나는 그게 싫었다.
다시 봄.
기형도를 기억하고, 형을 기억하고, 기형도의 시를 기억하고, 기형도의 시를 읽던 나를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