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를 기억하며

1월 8일과 1월 11일 사이에 앉아

by 식목제

다시 1월, 1월 8일과 1월 11일 사이에 앉았다. 어머니는 2019년 1월 8일, 형은 2015년 1월 11일, 세상을 떠났다. 상투적인 말로, 세월의 강은 무참하리만큼 빨리 흘러가버린다. 가만히 서서, 조용히 어느 강가를 서성이며, 어느 한 지점을, 이미 어제의 물이 아닌, 시간의 물덩어리들이 흘러가는 모습을 응시한다. 일렁이는 물결 위로, 물결 위에 반사되는 빛의 파편 언저리로, 그이들의 잔상이 흩어진다. 버얼건 오징어볶음과 막걸리를 앞에 두고 기일의 축제를 대신한다. 축제? 축제다. 축제가 아닐 이유가 무엇 있겠는가. 난 날도, 간 날도 축제의 날이다. 존재하게 되었다는 불가해한 사건을 축하해야 한다면, 존재하기를 멈추었다는 필연적인 사건도 축하함이 마땅하다. 어머니는, 형은, 삶의 고통 너머로 사라졌다. 축하받아도 될 일이다. 앞에 앉은 식구에게 막걸리를 따라 주고, 버얼건 오징어볶음을 목구멍으로 욱여넣고, 공연히 고개 들어 하늘을 쳐다본 뒤, 안으로 말을 삼킨다.


어머니, 잘 계시지요? 어머니가 좋아하던 오징어젓갈은 아니지만, 오징어예요. 오징어볶음은 형이 좋아했지요. 막걸리. 막걸리는 둘 다 좋아하지 않았나요? 오징어젓갈처럼 버얼건 오징어볶음과 막걸리 한 사발로 기일의 제사를 대신할게요. 근본 없는 무례라 하지 않으시겠지요? 어머니를 이곳으로 모셔오려 해요. 머나먼 그곳 서울에 혼자 계셔서 늘 마음에 걸렸어요. 볕이 잘 드는 납골묘를 알아두었어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아시겠지만, 아버지도 이제는 이곳에 계셔요. 매일 통화하고, 자주 들여다보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만나 뵐 때다마, 오랜 세월 우리 가족을 지켜주어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있어요. 어머니를 잊지 않게, 당신 이야기도 많이 해드려요. 어머니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물 지으시지만, 그것도 괜찮은 일이지요. 그럴 때마다, 당신을 대신해 아버지 얼굴을, 그이의 뺨을 만져드리곤 해요. 아버지의 남은 시간을, 당신이 잘 지켜주셨으면 해요. 그래주시겠지요?


아버지에게, 새해가 되었다, 계묘년, 토끼띠의 해가 되었다, 지금은 2023년이라 말해주었다. 벌써 그렇게 되었느냐며, 짐짓 놀란 척하지만, 사실 아버지에게는 이제 시간의 개념이 별 의미가 없게 되었다. 그건 그저 새해가 되었다는 내 말에 대한 추임새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내일 통화할 때, 다음에 만날 때, 난 또 새해가 되었다는 인사를 건넬 것이다. 생각해보니, 십이간지를 따라가는 우리의 관습 속에서 자신의 띠를 예닐곱 번 맞이하면 곧 무화될 준비를 해야 한다. 아버지에게는 아마도 다음 뱀띠의 해까지 시간이 허락될 테지만, 그다음 뱀의 시간을 맞이할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쯤에는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당신의 장자와 함께 우주의 일원이 된 기쁨을 누리고 있기를, 축제의 시간에 내가 올리는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고 있기를 소망한다. 아버지도 막걸리를 좋아하니 말이다. 그 좋아하는 막걸리를 입에도 대지 못한 채 가만히 누워 있는 삶을 삶다운 삶이라 할 수는 없다. 그저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말한다. 손자들은 잘 지내지? 잘 지내요, 아버지. 아버지 덕분에 다들 잘 크고 있어요. 아이들 걱정은 마세요. 그래도 큰손자 장가가는 건 보셔야지요. 봄이 되면, 앞뜰에 같이 산책도 나가요. 추운 겨울이 곧 끝날 거예요. 아버지가 잘 견뎌주어, 고마워요. 감사드려요.


12년 전, 신묘년, 토끼띠의 해가 생각난다. 그해에는 어머니도 형도 살아 있었지만, 모두들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난 실직한 후 다음 출판사를 알아보는 데 애를 먹고 있었고, 형은 하던 일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어려움에 빠져 경제적인 곤란을 겪고 있었으며, 어머니는 낙상에 따른 척추 골절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움직이는 걸 즐기지 않았던 어머니는 점점 더 누워 있으려만 했고, 삶의 활력을 잃어갔다. 그때부터 2019년 그날까지 그이의 삶은 그다지 좋은 삶이 아니었다. 좋은 삶이 아니었기에, 어머니는 수시로 이제 그만 죽고 싶다 했다. 그렇게 8년을 살았고, 마지막 4년은 당신의 장자가 먼저 간 것도 모른 채, 요즘 큰아이는 통 찾아오지도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난 끝내 장자의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는 서로를 만났을 테니 말이다.


시간이 해체된다. 흘러간 시간과, 흘러가는 시간과, 흘러오는 시간이 뒤엉켜, 혼재된 채 마음을 어지럽힌다. 무슨 의식처럼 달력을 바꿔 걸지만, 거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2019년에도, 2015년에도 달력은 바뀌었고, 누군가 태어났고, 누군가 죽었다. 올해라 이름 붙인 시간에도, 누군가 죽고, 누군가 태어날 게다. 분명한 건, 난 출생자 명단이 아니라, 사망자 명단에 오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 난 태어날 수 없고, 죽을 예정이므로. 누가 알겠는가. 결혼을 앞둔 신부가 느닷없는 교통사고로 죽고, 진학을 포기한 채 어린 가장이 된 건실한 청년이 노동 현장에서 급사하는 시절, 누가, 내일을 말하랴. 그저 흘러간 시간과, 흘러가는 시간과, 흘러오는 시간의 뒤엉킴을 견디며 죽음을 기다릴 뿐. 그러니 사는 일이란, 삶을 견디며, 죽음을 기다리는 일이었구나. 시간이 해체된다. 아, 해체된 시간이 나를 휘감는다. 나를 산산이 부서뜨린다. 해체된 내가, 해체된 시간을 산다. 죽은 자를 기억하며, 그날을 기다리며.




죽음이 다가와 당신의 눈을 가져가리

죽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도 자지 않고 귀머거리처럼

우리와 함께 있네. 오래된 후회나

불합리한 악습처럼. 당신의 눈은

공허한 말, 소리 없는 함성,

침묵이 되겠지

당신 혼자 거울을 향해

몸을 숙일 때 매일 아침 당신은

그것들을 보네. 오, 사랑스런 희망이여,

그날 우리도 알게 되겠지

당신은 삶이, 당신이 죽음이라는 것을


죽음은 모두를 바라보고 있네

죽음이 다가와 당신의 눈을 가져가리

악습을 끊는 것 같겠지

거울 속에서 죽은 얼굴이

떠오르는 것을 보는 것 같겠지

닫힌 입술에 귀 기울이는 것 같겠지

우리는 말없이 소용돌이 안으로 내려가겠지


_ <죽음이 다가와 당신의 눈을 가져가리>, 체사레 파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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