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되지 못해도, 무엇을 하고 싶다
봄비가 온다. 비만 오면 공연히 비를 맞으며 거리를 걷던 젊은 날이 생각나는구나.
오래전 <젊은이의 양지>라는 드라마에서 처음 만난, 아직은 풋풋하기만 했던 연기자 전도연이 오랜만에 드라마에 나와 이제 ‘대배우’가 되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인간실격>을 보며 난 또 울고 말았다. 본래 혼자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잘 우는 타입이지만, 이제는 아내가 옆에 있거나 말거나 울음을 쏟아내는 바보가 되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허진호가 작업했다는 점에서 이미 보기도 전에 울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드라마에서 가슴을 쓸어내린 지점들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나를 사로잡은 건 처연한 내적 독백이었다. 이 부분이 거슬린다고 평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난 달랐다. 아, 그토록 쓸쓸하고 외로운 자기 고백이 있을까. 나 역시 살아오면서 내적 독백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고, 젊은 시절에는 그 증상이 더 심했으며, 때로는 타인과의 내적 대화도 적잖이 하는 편이었다.
결국 아무에게도 가 닿지 않을 말들이었다. 결국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고통이었다. 그 말들을 안으로 삼키며, 그 감정들로 심장을 채우며, 삼켜진 그것들의 신열로 뜨거울 땐 그저 비를 맞으며 걸었다. 그도 모자라, 기어코 어디엔가 가 닿아야만 한다고 몸부림칠 땐 내 안에 타자를 만들어 끝없이 이야기 나누기도 했다. 때로 그 이야기는 며칠을 두고 계속되기도 했으니, 확실한 건 정상은 아니었다는 거다. 언젠가 친구에게 “너도 혹 그러냐?”라고 물었다가,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거냐는 핀잔만 들었다.
비정상의 나를 끌어안고 정상 세계의 페르소나를 만들어 살아가는 데는 꽤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러니 내 젊은 시절의 에너지는 대부분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의 부조화를 조정하는 데 쓰였다. 늘 어디로도 갈 수 없고, 어디로도 가지 않을 수 없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살아내야만 했다. 부정의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는 말도 강재의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 같다”는 말도 모두 ‘어디로도 갈 수 없고, 어디로도 가지 않을 수 없었던’ 내 삶과 맞닿아 있었다. 그러니 그 쓸쓸한 독백 앞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재간이 있나.
이제는 예전만큼 내적 독백을 하지 않게 되었다. 타자와의 내적 대화도 줄었다. 가끔 불쑥 튀어나올 때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생각의 조각들을 흩어버리곤 한다. 그걸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건 알지만, 결코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 수 없는 건 알지만, 마치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존 내쉬가 그러듯,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 하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 여기서 나는 ‘건강하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은 많은 사람들이 그 믿음의 방식을 따라 자기 삶을 살아간다.
드라마 끝에 부정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무엇이 되느냐보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하지만 무엇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움켜쥐어 보지 못한 사람에게, 오히려 그저 무엇을 하며 살아가느라 바빴던 사람에게, 살아내느라 무엇을 해야만 하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것’밖에는 무엇이 되지 못할 사람에게, 그 깨달음은 아프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아프지만,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진실이기도 하다. 무엇을 하자. 무엇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