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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목제 Sep 14. 2023

원자로 해체된 가족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안부를 전한다

아기를 안고 가게를 찾는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보니, 우리 아이가 아기였던 시절을 넘어, 내가 아기였던 언젠가를 넘어,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외할머니, 이하 할머니)가 아기였을 때를 생각하게 된다. 해방 이전인 1941년에 난 어머니는 분명 산부인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에서 세상의 빛을 보지는 않았을 게다. 1967년에 죽은 채로 난, 내 누이 아닌 누이도 어느 골방에서 산파의 손을 빌렸다는데, 1941년은 말해 무엇하랴. 하필 맹추위가 기승을 부렸을 한겨울에, 또한 어느 골방에서 아기를 낳았을 할머니에게도, 어미의 따뜻한 뱃속을 벗어나자마자 얼음장 같은 냉기를 느꼈을 어머니에게도, 그날은, 쉽지 않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생존을 건 싸움을 벌인 날이었을 게다. 출산과 관련된 의료기술이 발전한 지금도 다음 세대를 잉태하고 낳는 사건은 때로 목숨을 건 일이 되는데, 그때는 오죽했겠는가.


오랜 산고 끝에 난 아기와 어미 사이의 탯줄이 잘리고, 포대기에 싸인 아기가 어미의 품에 건네지는 모습을 그려본다. 1941년 음력 1월 6일, 한 여자아이가 2019년 양력 1월 8일 무화될 때까지 이어질 숨을 내뱉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산고로 인해 무참히 녹아내린 몸으로 아기를 가만히 안으며,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1986년 6월 어느 날이 될 때까지, 외롭고 쓸쓸한, 때로는 참혹한 생이 계속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한 가닥 기대와 희망을 품었을까. 외로이 외딸을 낳은 할머니는, 그 자신도 외로운 외딸이었다는데, 그이의 아비는, 어미는 딸의 출산을 따뜻하게 보듬어주었을까.


생각해 보니, 나는 할머니가 난 날도 알지 못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할머니를 위한 미역국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은 적 없었고, 그 누구도 그이가 첫울음을 터뜨린 날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형제자매도, 왕래하는 일가친척도 없던 할머니는, 색씨집의 참혹한 시절을 지나, 딸네 집이 아닌, 사위네 집에 덩그러니 들어앉아, 식모살이 아닌 식모살이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 당신은 무슨 음식을 좋아하셨나요. 자손들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 먹일 적에, 혹 당신이 좋아하던 반찬 하나 올려두셨나요.


할머니가 삼악산 화장터에서 재가 되기 전에, 할머니가 춘천 어느 집에서 나무로 된 관에 누워 있기 전에, 할머니의 어미는 누구였는지, 어린 시절 어미가 지어주던 밥은 맛있었는지 물어볼 걸 그랬다. 1800년대 막바지에 태어나 1910년경 할머니를 낳았을, 얼굴도 성도 모르는, 할머니의 어미, 나의 외증조할머니는 격동의 시대를 지나며 살아낸 삶을, 그사이에 난 외딸을 기꺼워했을까. 할머니, 당신의 어머니, 이름 석 자는 무엇이었는지요. 그이는 무엇으로 당신을 먹였는지요. 할머니, 어미가 먹여주던 젖이 기억나는지요. 할머니, 당신이 내 어미에게 먹여주던 젖도 기억나는지요.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할머니, 당신의 고향은 어디였는지요. 할머니, 당신의 어미는 당신을 어디서 낳았는지요.


어머니를 구성했던 원자들이 해체되어, 할머니를 이루었던 원자들이 해체되어, 형과 한 몸이었던 원자들이 해체되어, 이 세상의, 이 우주의 일원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내 어미의 어미의 어미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저 지금 이 순간과 아무 관련 없는 원시 영장류에, 아니 더 나아가 최초의 작디작은 생명체에 가 닿는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할머니, 내가 칼 끝으로 가면, 그 누구의 머릿속에도 이름 석 자 하나 남지 않을 할머니, 그해 여름이 되기 전 당신의 딸이 만들어준 갈비찜은 맛있었는지요. 할머니, 당신이 만든 갈비찜을 좋아하던 맏손주는 함께 잘 있는지요. 하지만, 할머니, 갈비찜은 넣어두시압. 입구멍이 부실한 당신의 딸은 씹어 삼킬 수 없을 테니.


할머니가 만두소를 만들면, 어머니가 반죽을 치대고, 자손들이 둘러앉아 못난이 만두를 빚던 어느 날을 떠올리리다가, 문득 아이에게 묻는다. 아들아, 이번 가을에 집에서 만두 해 먹을까? 집만두. 아아, 아이야, 너는 또 어디서 생을 생으로 이어가려 하느냐. 아아, 아이야, 너는 또 어디서, 삼삼오오 둘러앉아 만두 빚던 한철을 가뭇가뭇 더듬어보려 하느냐. 아비가 못내 그리워하지 못한 시절을, 너는 끝내 그리워하려 하느냐.  비가 그치면, 나는 또 휘적휘적 어디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까. 어디로도 갈 수 없고, 어디로도 가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이여.




태양을 한 바퀴 돌아 다시 같은 자리를 지나가는 지구에게, 원자로 해체된 어머니와 할머니와 형의 안부를 묻는다. 아직 해체되지 않은, 해체될 날을 기다리는, 아버지와 누이와 나의 안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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