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식목제 Oct 10. 2023

가을비가 이리 내려도 되는가

생이 기약없이 무너져 내리는데

2023년 9월 28일, 가을비 내리던 날의 기록


기억나지 않는다, 신수동의 빗소리도, 월명동의 빗소리도. 예닐곱 어린 나이의 나는 쏟아져 내리는 비를 애타게 기다리지 않았다. 비가 온다는 것은, 그저 비가 온다는 것이어서, 내 육신의 어떤 세포도 어둡게 내려앉은 축축한 날에 감응하지 않았다. 그때 난 그저 천진하고 어리숙한 짐승이었다. 억수 같은 비가 슬레이트 지붕을 사정없이 두드렸을 신수동의 어느 여름날, 어쩌면 나는, 어쩌면 우리는, 어둑어둑한 골방에 모여, 나무로 된 집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출처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인 채, 귀신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은 마음의 유령이었을 테지. 그 시절, 일찌감치, 빗줄기를 사랑했다면, 빗줄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려 했다면, 마음의 유령 따위 씻어버릴 수 있었을 텐데. 삐걱거리며 다가오던 귀신 발걸음 소리가 기껏 장난감 소방차 소리에 놀라 달아나 버렸다는, 집단적인 환상을 지어내는 일 따위는 없었을 텐데. 오랫동안 우리가 공유했던 그 환상의 기억은, 어쩌면, 존재했지만 부재했던, 어머니와, 아버지와, 결코 안온하지만은 않았을, 텅 빈 집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비는, 아홉 살 어느 날, 춘천에서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기억한다기보다, 그렇게 믿는다. 생각난다. 그다지 억센 바람이 아님에도 쉽게 뒤집혀버리곤 했던, 누런 대나무살의 파아란 비닐우산, 그리고 그 위로 후드득 후드드득 부딪던 빗소리. 고개를 숙인 채, 부러 빗물 고인 웅덩이를 찰박찰박 밟을 적에, 허술한 운동화 틈새로 스며든 차가운 감각. 뿌리에서 물을 길어 올리듯, 어느새 양말을 타고 오르던 빗물. 하지만 그건 중력을 따라 사정없이 지상으로 곤두박질치다, 파아란 비닐우산에 부딪히며, 둔탁한 비명을 질러대던 바로 그 빗물이었을까. 아니면, 끝내 하늘 위로 솟구치지 못한 채 낙하하며 산산이 부서져버린, 빗물의 피였을까. 알 수 없지만, 어린 나는 그저 빗물에 젖는 것이 좋아, 뒷일은 생각지도 않은 채, 무작정 빗길을 걸었다. 어머니는 염을 하듯 말없이 내 젖은 다리와 발을 닦아주었다. 어머니, 나를 닦지 마세요. 나는 아직 죽지 않았어요. 나를 염하지 마세요. “지겨워 죽겠네. 이놈의 새끼들아, 니 에미를 잡아먹어라!” 오래된 신문지를 입에 문 운동화는 연탄아궁이 한쪽에서 모락모락 수증기를 내뿜으며 말없이 앉아 있었다. 운동화의 영혼인지, 빗물의 영혼인지, 알 수 없는, 그 하이얀 김이 언젠가 다시 비가 되어 지상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그리하여 언제든 내 존재를 다시 적셔 버리리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홀린 듯, 영혼 아닌 영혼에 사로잡혀 운동화 위로 아스라이 사라지는 그것을 넋 놓고 바라보곤 했다.


지구와 몸을 맞대고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친다. 그리하여 비는 피어나는 생이라기보다 추락하는 죽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생이 죽어 다시 생의 거름이 되듯, 비는 죽어 다시 지상의 생을 위한 거름이 된다. 그러니, 어찌 보면, 생을 생으로 잇는다는 것에는 반드시 추락이, 죽음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할머니, 당신은 죽어 어머니 생의 거름이 되었는지요. 어머니, 당신은 죽어 내 생의 거름이 되었는지요. 형, 당신은 죽어 지상에 남은 아이들의 거름이 되었는지요. 저리 비가 내리는데, 당신들은 이제 지상의 생을 위한 거름으로 내리지는 않는 건지요. 할머니는, 어머니는, 비를 좋아했을까. 비가 내리면, 벽지를 따라 차오르는 곰팡이가, 무겁게 내려앉은 솜이불이, 장판 아래 기어 다니는 벌레들이, 눅눅하고 치욕스러웠던 나날들을 떠올리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곧 비가 그치기를, 생의 곰팡이를, 무겁게 젖은 영혼을, 마음속의 벌레들을 널어 말려야 할 날을 기다리지 않았을까. 형은, 비를, 좋아했을까. 날마다 술에 취해, ‘비’ 노래를 부르던 형은, 정말 비가 좋아 비를 불렀을까. 어쩌면 그이도, 나처럼, 그저 빗물에 녹아내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가을비가 이리 내려도 되는가. 아비는 철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비가 내리는 줄도 모르고, 곧 겨울이 오리라는 것도 모르고, 기약 없이 무너져 내리는 생을 망각하고 있는데, 가을비가 저리 내려도 되는가. 누이야, 가을비가 이리 내리는데, 너는 아직도 네 생을 구원할 비를 기다리고 있느냐, 아직도 죽음으로 생을 구하려 하느냐. 가을비가 이리 내려도 되는가. 비어 가는 들판에는 생의 흔적만이 남아, 곧 말라비틀어질 죽음을 기다리는데, 가을비가 저리 내려도 되는가. 허나, 날이 개면, 저 비는 다시 하늘로 솟아오를 테니, 생을 위한 죽음을 다시 준비할 테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비를 맞으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것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겨울비를, 봄비를, 여름비를, 다시 가을비를 기다리는 것뿐.

매거진의 이전글 헛울음을 안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