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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목제 Dec 02. 2023

경계에 서서,

2023년 12월 2일, 낮은 구름, -3도~7도

어둠이 빛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시절이 되니, 일터로 나설 때에도 아직 사위가 어스름하다. 곧 태양이 빛의 시간이 왔음을 알릴 것이기에, 칠흑 같은 어둠은 아니다. 젊은 시절, 난 언제나, 밤이 낮으로, 낮이 밤으로 바뀌는, 빛과 어둠이 혼재하는, 그 짧은 시간을 좋아했다. 아마도, 경계에 선 모호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를 닮은 시간이었다.


경계에 선 채 바닷가로 출근한다. 가게에 도달하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수평선 너머로 붉은빛이 감돈다. 얼핏 보면, 물과 공기를 가르는 그 지점에 피가 배어 나오는 듯도 하다. 어둠을 뚫고 빛을 받아들이는 일이란, 죽음을 품고 기어이 삶을 살아내는 일이란, 경계에 서서 삶과 죽음을, 존재와 부재를 끌어안는 일이란, 그렇게, 피 흘리는 일이었던가. 그러나, 내 피로는 어떤 생도 속죄하지 못하리.


편의점 고양이는 오늘도 어김없이 조식을 기다리고 있다. 밤새 배가 다 꺼졌구나. 네게도 속죄해야 할 생이 있으려나. 어리석은 소리. 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내게, 도루묵의 근황을 묻는 인간들에게는, 나처럼, 속죄해야 할 생이 있겠지. 제발, 통발 가득 들어 찬 도루묵을 치켜들며 함박웃음 짓진 마시길. 물고기를 잡으며 애도하면 안 될까. 도루묵의 죽음을 애도하면,  그의 죽음이 당신의 생으로 이어지는 것에 경의를 표하면, 부질없는 당신의 생을 조금은 속죄할 수 있을 텐데.


숨을 쉬고, 밥을 먹고, 밥을 버는 것 말고는, 생의 실재와 너무 멀어져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다가, 과연 생은,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것인가, 자문한다. 경계에 선 시간, 그건 밤인가 낮인가. 경계에 선 존재, 그는 삶인가 죽음인가. 빛에도, 어둠에도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나는, 산 자인가 죽은 자인가.


내가, 비 내리는 날을 기다리는 까닭을 알겠다. 우중 하루는 경계의 시간, 경계에 선 존재가 눈물을 흘리는 시간. 12월이 가기 전, 겨울비가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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