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식목제 Dec 06. 2023

고독이, 심장에서 태어났다는 걸,

2023년 12월 6일, 흐리다가 저녁 무렵 뇌우, 1도~13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슬픔이 밀려오는 날이 있다. 까닭 모를 슬픔, 실체 없는 슬픔이다. 이런 날, 가슴을 쥐어짜면, 버얼건 물이 흥건히 배어 나올 것만 같다.


이런 날은 조심해야 한다. 슬픔의 파동이, 스스로 운동에너지를 소진할 때까지, 쉬이 사그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날은 조심해야 한다. 동풍을 따라 낮은 구름이 흘러가며, 잿빛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만으로, 눈물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날, 누군가 나를 알아챈다면, 왜 그리 슬픔에 잠겨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지. 눈을 떠보니, 슬픔이 나를 찾아왔어요. 아, 당신에게만큼은, 솔직하게 털어놔야겠네요. 실은, 제가 슬픔이랍니다. 그러니, 밤새, 죽음으로부터 돌아와, 다시, 나를 자각한 것뿐이에요.


다행인지, 아무도 나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들, 욕망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슬픔에 잠긴 채 욕망과 마주하노라면, 슬픔을 안고 있는 고독이, 쓸쓸함이, 딱딱하게 만져진다. 딱딱한 고독. 고독에도 질감이 있다면, 뻐얼건 용암으로 끓어 넘치다가, 꺼멓게 식어버린 현무암처럼 딱딱할 거야. 고독이 실은, 심장에서 태어났다는 , 욕망은 알까.


욕망에게 물었다. 무얼 찾으시나요? 따뜻한 음료요? 온장고에도 있고, 커피 머신으로 내려 먹을 수도 있습니다. 카페라테요? 라테는 두 가지가 있는데, 진짜 우유를 섞어 먹는 이 메뉴가 더 맛있어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 정말 친절하시네요. 그래요? 슬퍼서 그런 거예요. 쓸쓸해서 그런 거랍니다. 고독을 당신에게 감염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내일은 대설. 맑을 예정. 대설 전야, 슬픔으로 인해 뇌우를 흩뿌리던 하늘이, 고독으로 인해 딱딱하고 건조해질 예정. 눈구름을 말려버릴 예정.

매거진의 이전글 경계에 서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