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와 삶 읽기

어머니는 책을 좋아하셨지

by 식목제

# 1 _ 어머니는 책을 좋아하셨지


어머니는 책을 좋아했다. 다독가는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책을 읽고 또 읽으며 인상적인 구절을 메모하곤 했고, 때론 한번 들어 보라며 직접 읽어 주기도 했다. 그런 분이었기에 어머니는 내가 출판사 편집자가 된 것을 그리 못마땅하게 여기지 않았다. 명절 때마다 ‘남의 글 교정이나 보는 일 하지 말고 더 큰 꿈을 꾸라’며 질책하던 아버지와는 달랐다. 어머니는 내가 선임 편집자의 보조 역할을 하던 시절을 지나 첫 책임 편집한 책을 내놨을 때 교보문고에 직접 가 10권을 구입해서 친구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우리 아들이 만든 책이라며.

그러던 어머니가 더 이상 책 읽는 것도 힘들다며, 눈이 아픈 데다 예전처럼 잘 읽히지도 않는다며 책을 내려놨을 때, 어머니는 삶에 대한 의욕을 상당히 많이 잃은 듯했다. 여전히 책을 읽고 있었을 때, 어머니는 요즘 가수 중에 비가 제일 멋있다며, 요즘 드라마 중에 이게 제일 재미있다며, 어제 나가 보니 코스모스가 너무 예쁘게 피었다며 삶의 활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머니는 모든 것에 흥미를 잃어버렸고, 몇 해 지나지 않아 애기가 되어 버렸다. 어머니가 그렇게 되기 전 마지막으로 꼼꼼히 들여다본 책은 ‘옥편’이었다. 형의 둘째 아이 이름을 지어 주기 위해서였다.


어머니는 오래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신 아버지가 그렇게 망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고, 책을 더 많이 읽고 싶었다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 2 _ 어머니는 ‘인간이 왜 생겨났느냐’고 물으셨어


어머니에게 책은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매체였다. 인터넷이 도래한 시대까지 살았지만, 아버지와 달리 스마트폰은커녕 컴퓨터도 전혀 사용할 줄 몰랐다. 당신에게는 다량의 정보를 접하고 흡수하는 것이 그리 관심 가거나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책을 통해 삶의 문제를 둘러싼 주제를 읽고, 생각하고, 메모해 두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가 던지는 질문은 주로 ‘인간은 대체 왜 생겨난 걸까?’와 같은 종교적이며 철학적인 것이었고, 중년 이후 이는 불교 서적이나 철학적 에세이를 읽는 것으로 이어졌다.(물론 여기서 말하는 철학적 에세이가 동서양 사상가들의 학적 에세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내가 대학 시절 부전공으로 종교학을 선택한 뒤, 담당 교수님들에게 추천받은 이런저런 부교재들 중 비교적 대중적인 에세이에 속하는 것을 어머니에게 소개해 주었을 때도 무척 좋은 책이라며 잘 읽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안타까운 것은 어머니가 아무리 책을 읽어도, 아무리 생각거리가 많아도 그걸 함께 나눌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사주에 ‘스님 팔자’라고 나온다는 이야기가 무색하게 세속적인 사람이었고(게다가 나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무식하다’는 표현을 쓰는 게 무척 싫었다), 자식들은 마음의 진창에 빠져 악다구니를 쓰기에 바쁜 이들이었고, 친구들은 돈 자랑하며 놀러 다니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독서의 양’만 가지고 말한다면 어머니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또한 ‘정보의 양’을 갖고 말한다면 어머니가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회생활을 하며 이런저런 매체와 사람들을 접한 아버지 쪽이 정보에 관한 한은 더 유리한 편이었다. 아버지는 아마 그 지점을 두고 ‘무식’을 운운했을 텐데, 어머니도 사회생활을 했다면 충분히 얻고도 남을 정보였을 테니 기회 불평등을 감안하지 않고 그런 표현을 쓴다는 건 남편으로서 지나친 처사 아니었나 싶다.


어쨌든 중요한 건 어머니가 나누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으리라는 점이다. 우리가 삶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가족을 비롯한 관계망 안에서 나누어야 할 것이 꼭 정보나 지식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우리가 더불어 살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은 어쩌면 아주 적은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이 너무 적어서 잘못 살게 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나는 책 읽기라는 것이 결국 삶 안에 함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지식 자랑이나 정보량 자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특정 실용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어서가 아니라 삶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내 어머니에게 책 읽기가 그런 것이었듯이 말이다. 책을 통해 삶 안에서, 관계 안에서 가치 있는 물음을 던지게 하고 또 서로 나누게 만들 수만 있다면 사실 책을 몇 권 읽었느냐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약 독자인 내가 “나 올해 책 50권 읽었어. 그럭저럭 많이 읽었지?”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면, 출판인인 내가 “우리 출판사 올해 100만 권짜리 베스트셀러 냈어. 대단하지?”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면 ‘독서량’만을 이야기해도 된다. 하지만 책 읽기란, 책 만들기란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인터넷이나 일간지, 주간지 등 다른 매체가 아닌 책이라는 물성 안에서 읽고 싶어 하는 것, 느끼고 싶어 하는 것,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책의 가치, 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들이 책을 통해 얻고 싶어 하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다. 결국 중요한 건 매년 50권의 책을 읽는 사람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아무것도 느끼려 하지 않는,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을 줄이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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