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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s Jul 22. 2020

[OB'sDiary]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타인의 슬픔을 상상하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늘 나보다 커다란 슬픔을 감당해야 하는 타인의 감정을 상상하며 살아왔다. 내가 겪어보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겪을 일, 내가 평생 겪어볼 일이 없을 것 같은 일. 다양한 의미로 화려한 인생 속에서 일종의 '통과 의례'처럼 생겨나는 슬픔을 나보다 먼저 만나고 그 슬픔이 지나간 후에도 오롯이 삶을 지탱하고 서 있는 사람들이 겪었을 고통을 상상한다. 뒤돌아보기 무섭게 몰려오는 파도 같은 일상 속에서도 밥은 잘 챙겨 먹었을지, 먹었다면 그 밥알은 얼마나 모래알 같았을지, 아니 사실 밥도 물도 평소와 같기만 했다면 슬픔은 또 어디로 오는 건지. 나는 슬픔에 목이 마른 사람처럼 타인의 슬픔을 짐작해왔다.


어제도 나는 내가 평생을 살아도 모르고 싶은 상실을 여러 번이나 겪어버린 사람의 밤을 헤아리다 잠들었다. 문득 찾아오는 그리움과 외로움을 어떻게 마주하고 있을까. 밤마다 깊어지는 것은 내일에 대한 설렘보다도 수많은 어제에 대한 회한일 때가 많은 인생에서 당신의 밤은 얼마나 오랜 과거까지 오가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어 한참을 뒤척였다. 나는 왜 이렇게 당신의 슬픔이 궁금할까. 왜 당신이 슬픔을 견디는 방법과 슬픔이 흘러가는 길을 좇고 싶을까. 그러다 결국, 왜 미안해질까. 내가 그 슬픔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그래서 당신을 위로할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것 같아서. 저 새벽 너머에 있는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며 잠드는 날의 끝엔 늘 미안함이 자리한다. 인간을 가장 철저히 외롭게 만드는 것은 육체적 고통이라지만, 꼭 그 철저한 영역까지 도달하지 않더라도 당신을 지독히도 외롭게 만들어버릴 고통을 내가 나누지 못하는 게 유독 사무치게 아픈 밤이 있다.


같은 슬픔을 만들어 앓을 수도, 비슷한 고통에 나를 내던질 수도 없어서 미안한 밤이 쌓이고 쌓여 이 글이 되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당신의 상처를 들쑤셔 생채기를 만드는 일이 될까봐 그 말조차 삼킨 채, 늘 모든 미안함을 짓눌러 꾹꾹 담은 고마움만을 전한다. 세상을 이만치 살아도 모르는 일들을, 지금의 내 나이가 되기 훨씬 전에 모두 알아버렸는데도 쓰러지지 않고 당신의 자리에 서있어줘서 고맙다고. 나는 언제나 파도가 당신을 삼켜버린 후에야 당신이 그 파도를 뚫고 다시 나에게 와줄지, 발조차 젖지 않을 건조한 모래밭에 서서 오매불망 기다리기만 했던 것 같은데. 수많은 파도를 넘어올 수 있었던 건 모두 내 덕분이었다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차마 그 바다에 같이 뛰어들 수조차 없는 몰염치한 나를 향해 그저 괜찮다며 웃어줘서 고맙다고. 그래서 정말, 이젠 고맙다는 말조차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랑한다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심장이다. 심장은 언제나 제 주인만을 위해 뛰고, 계속 뛰기 위해서만 뛴다. 타인의 몸속에서 뛸 수 없고 타인의 슬픔 때문에 멈추지도 않는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라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에게 한계다. 그러나 이 한계를 인정하되 긍정하지는 못하겠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니까. 그럴 때 인간은 심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픔을 공부하는 심장이다.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이기적이기도 싫고 그렇다고 위선적이기도 싫지만, 자주 둘 다가 되고 마는 심장의 비참. 이 비참에 진저리 치면서 나는 오늘도 당신의 슬픔을 공부한다. 그래서 슬픔에 대한 공부는, 슬픈 공부다.(2018.9.1)
 - 신형철 『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28p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당신의 슬픔을 상상한다. 당신의 발보다 거칠지 못한 발로 세상을 딛고 서 있는 내가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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