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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만두 한 주먹 Apr 25. 2022

[21세기 원시인]
ep 3. 원시인들의 수렵생활

우리가 디자인한 삶의 방식은 이렇습니다

1) 먹고는 살아야지


이쯤 되면 모두가 궁금해한다.

그래서 쟤네 뭐 먹고 살아?


이 말이 있는 그대로 ‘무엇을 먹고 사는지’에 관한 답변을 바라는 직관적인 질문이 아님을,
필자 또한 이미 인지하고 있다.      


아무리 정착 서사가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먹고 살지 못하면 모두 다 무용지물.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우리는 치.열.하.게 노력하는 중이다. 한 데 모여 생활하고 있지만 뚜벅이마을의 청년들은 저마다 먹고 사는 모습이, 그리고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농어촌이라고 해서 농업, 혹은 어업을 영위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로컬이라는 새로운 기회의 땅 위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해 볼 수 있다. 그 정도의 용기도 없이 포기해 버리기엔 우린 아직 너무 젊으니까.     


지역 특산물을 활용해 맛있는 술을 만들어 상품화하는 친구도 있는가 하면, 기존의 디자인 기술을 활용하는 대신 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 외주 작업을 도맡아 하는 친구, 그리고 로컬의 문화를 멋깔나게(?) 만들자는 목표를 가지고 문화기획사를 설립한 청년들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걷는 동안에도, ‘지속 가능한’ 로컬 살이를 위해 우리는 각자만의 방법으로 서로를 돕곤 한다.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주위를 둘러보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이곳에서 한 개인의 능력치는 1인분에 그치지 않고, 여러 사람의 도움에 힘입어 배로 불어나곤 한다. 내게 없는 무언가가 다른 누군가에겐 있기 마련이니까.


영덕의 로컬 특산품인 게살을 이용해,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힙한 김밥집’을 운영 중인 친구들의 이야기를 잠시 해 볼까 한다.



2) 2021년 게살김밥집 오픈 사건


바야흐로 2021년 12월 1일, 영덕군 영해면에 게살김밥집 하나가 들어섰다.

그 과정이 마치 역사의 현장과 같아 소제목을 이리도 거창하게 지었다.

    

원시인들은 김밥집을 개업하기 위해, 아니 먹고 살기 위해 영해면에 자리한 건물 한 채를 임대했다. 듣기만 해도 범상치 않은 그 이름 ‘서래다방’. 3년 정도 방치되어 있던 이 건물이 바로 이들의 꿈을 실현할 첫 번째 터란다.      


낡고 허름한 공간을 인테리어 업체에 맡겨 리모델링할 정도로 돈이 많냐고? 에이, 그럴 리가. 돈이 없다면 직접 손과 발로 뛰는 수밖에.


그렇게 미친 짓이 시작되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직접 손으로 벽지, 아니 곰팡이를 뜯어내고, 수소문 끝에 장비를 빌릴 곳을 찾았다. 그뿐인가? 바닥 평단화 작업과 폐자재 처리까지. 어느 하나 빠짐 없이 전 단계에 걸쳐 공간에 대한 애정을 가득 쏟아 넣었다. 페인트칠을 하며 폐건물에 이들의 색을 입히는 데 걸린 시간만 무려 4개월! 아직도 나의 시계엔 그때 묻은 페인트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 건물 앞을 지나칠 때면 새삼스레 경이한 눈으로 위를 올려다보게 되지만, 그 역사를 생각하면 역시나 두 번 다신 못할 일이다.     


함께라면 못 할 것이 없다는 뻔한 말을, 우리는 그렇게 믿게 되었다.

여유롭게 걷기 좋아하던 원시인들이 잠시 속보(速步)로 걸었던 여름이었다.



3) 속보(速步)의 끝은 창대하리라


폐허였던 ‘서래다방’이 4개월 만에 ‘DUCKS(덕스)’라는 이름으로 아래와 같이 탈바꿈했다.

여기 뭐 카페 하나 봐?     

오고가는 주민들이 무심코 던지는 질문에서 카페 못지 않은 김밥집의 HIP함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원시인’과 ‘hip’. 이토록 역설적인 두 단어의 공존은 DUCKS(덕스)라는 공간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 지난 여름부터 이어진 우리의 걸음은, 이렇게나 그럴 듯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

      

유쾌하게 말하려 노력했지만, 사실 종착점까지의 걸음은 상당히 고단했다. 그리고 고독했다. 함께 있음에도 느껴지는 고독이란, 누구 하나 손 쓸 새 없이 동시에 맞이하는 고독과도 같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로 쉽지 않았다. 우리를 앞질러 가는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고, 더 좋은 환경에서 걸어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열등감에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그래서 더 증명하고 싶었다. 걷는 행위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든 끝까지 걷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길이 이어져 있다면 종착지는 결국 같으리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되새겼고, 마침내 피니시라인에 도착했다. 서두르려다 제 페이스를 오버해 끝내 완주하지 못한 이들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걸음의 미학‘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말해 주고 싶었다. 또 보여 주고 싶었다. 걸으면 된다고, 걸어도 괜찮다고. 

경험을 통해 새로운 교훈을,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얻게 된 ‘게살김밥집 오픈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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