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혼자 있을 때보다, 누군가와 있을 때 더 선명해진다.
길을 걷다 우연히 안치환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그 노랫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사람이 정말 그렇게 아름다운 존재일까? 적어도 나에겐, 사람은 아직도 어렵다. 아니,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특유의 예민함 때문일까. 나는 눈치가 빠르다. 같은 공간의 공기만 살짝 달라져도 누군가의 기분이 바뀌었음을 안다. 지금까지 사귀었던 사람들도 말했다. "넌 내가 화나면 제일 먼저 알아채." 그 말이 칭찬 같으면서도, 사실은 내가 늘 눈치를 본다는 뜻이었다.
"왜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그렇게 의식하세요?" 의사가 물었다. 나는 요즘 그에게 마음을 자주 열고 있다. 마치 내 안의 대나무숲처럼. 짧은 5분의 대화지만, 나는 그 속에서 자꾸 깨닫는다.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배웠던 소크라테스의 문답법, 그게 이런 거였을까. 내 주치의는 정말 명의다. 나는 사람들의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 한다. 그게 내가 완벽하려 애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눈에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 결국 나를 제일 불편하게 만드는 건 남이 아니라, 그 기대에 맞추려는 나 자신이었다.
하루는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사무실 책장에 올려뒀다. 점심시간에 한 챕터라도 읽어보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회식 자리에서 상사가 물었다. "책 제목 봤는데... 요즘 힘든 일 있나?" 진심 어린 걱정이었겠지만, 그 순간 나는 괜히 민망해서 웃어버렸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 상사도 '미움받을 용기'라는 제목에 잠시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를 걱정하면서도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참, 사람은 어렵다.
길을 걷다 보면 별일 아닌데 마음이 풀릴 때가 있다. 버스에서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볼 때, 커피를 건네던 점원이 "오늘 날씨 좋죠?" 하고 말을 걸어올 때. 모르는 사람들의 사소한 친절이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내가 그렇게 어렵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어느새 나를 위로하고 있었던 거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람이란 참 묘하다.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또 나를 살게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회사에서, 길거리에서, 그리고 직장에서도. 내 하루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건 항상 사람이었다. 오늘도 길을 걷다 문득 그 노래가 들린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젠 그 말이 예전처럼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은 여전히 어렵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 피어나는 따뜻함이
꽃보다 더 아름답다는 걸 —
"우리가 서로에게 남길 수 있는 건 결국 다정함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