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은 늘 불편함을 동반한다.
"괜찮습니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나는 남들에게 "괜찮아요."라는 말을 습관처럼 한다. 괜히 남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루는 점심시간, 직장 동료가 나에게 물었다. "점심 어떻게 할 거예요?", "아, 오늘 약속 있어요" 사실, 약속 따윈 없었다. 오전에 그 동료가 점심 운동 예약을 하는 통화를 엿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약속이 없다고 말하면 분명 나를 챙기려 했을 것이다. 나는 그 친절이 부담스러웠다. 아니, 그 마음에 빚지고 싶지 않았다.
나를 챙겨주려는 사람 앞에서 나는 언제나 어색했다. "괜찮아요.", "저는 괜찮아요." 그 말 뒤에는 '제 걱정 안 하셔도 돼요.'라는 뜻이 숨어 있었다. 타인을 배려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내 마음을 들킬까 봐 두려운 방어였다. "맞아요, 저도 그런 적 있어요." 내가 가장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다. 공감을 표현하기 위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하지 않았던 경험에도 "저도요."를 붙이고 가보지 않은 여행지에도 "거기 정말 좋죠."를 덧댄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진짜 나' 대신 '상대가 좋아할 만한 나'를 만들어간다. 내가 잘하는 건, 연기였다.
"결국 자존감의 문제일 수도 있어요." 의사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존감이요?" 나는 자존감이 꽤 높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밖에서는 활발하고 의견도 뚜렷하다. 상사에게도 불만이 있으면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줄 안다. 그래서 스스로를 ‘외유내강형’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의사의 말은 내 믿음에 균열을 냈다.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라, 방어가 강한 사람이었다.
남들에게 속마음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혹시라도 이상하게 볼까, 실망할까.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돌았다. 그러다 보면 결국,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괜찮아요." 그 말 하나면 관계는 무사하니까.
어느 날 문득, 노트를 꺼냈다. 표지에 볼펜으로 썼다. '거짓말 줄이기 프로젝트.' 어떤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수십 번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물론 대부분은 누군가를 속이려는 게 아니라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사회적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는 요즘 그 거짓말들이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어느새 거짓말이 나의 습관이 되어 있었다. 진심을 말하지 않는 편이 더 안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다짐했다. 앞으로는 조금 덜 괜찮다고 말하자.
"오늘 점심 약속 있어요?", "오늘 점심 약속은 없는데 살 빼려고 혼자 샐러드 먹으려 가려고요." 앗, 점심 약속이 없다는 것은 솔직히 말했는데 다이어트를 할 거라는 거짓말을 해버렸다. 쉽지 않은 길이다. 그래도 뭐 어찌 첫술에 배부르랴 노력하면 그 또한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안다. 거짓말을 줄이는 건 완벽하게 솔직해지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나를 조금씩 믿어가기 시작했다는 증거라는 걸. 오늘도 나는 노트 한쪽에 썼다. "조금 덜 괜찮다고 말하기." 그게 지금의 나에겐, 진실한 첫걸음이다.
"진실을 말하는 데 필요한 용기는, 세상을 바꾸는 용기와 다르지 않다." - 버지니아 울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