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가 아니라 불안이었다
"죄송한데요..."
오늘도 이 말로 하루를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6층, 이제 내가 내려야 할 곳이다. 앞에 사람들이 있어 "죄송한데 좀 내릴게요."라고 말했다. 왜 죄송하지? 나도 나의 사무실을 갈 권리가 있는데. "미안한데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죄송하지만 이거 맞는지 확인 좀..." "미안, 지나갈게요." 하루를 세어보니 '죄송' '미안'이라는 말을 23번 했다. 정말 미안한 일은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아니다. 정확히는 '언제부터'가 없다. 그냥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도 "미안, 지우개 좀 빌려줘"였고, 중학교 때도 "죄송한데 이거 좀 알려주세요"였다. 태생적 사과 인간이랄까. 엄마가 말했다. "너는 어릴 때부터 그랬어. 놀이터에서도 '미안해' 하면서 그네 탔잖아." 그러고 보니 맞다. 이것이 나였다.
"왜 그렇게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세요?" 의사가 물었다. "그게... 민폐 끼치는 거 싫어서요." "음... 그런 것들이 민폐는 아니잖아요." 맞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 존재 자체를 미안해하고 있었다.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시간을 쓰는 것도, 심지어 숨 쉬는 것까지도. 마치 이 세상에 나라는 사람이 있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처럼.
어제는 거래처에 전화를 걸면서도 "바쁘신데 죄송하지만"으로 시작했다. 그냥 업무 전화인데. 심지어 내가 주문을 하는 입장인데. 오늘 아침엔 빵집에서 "죄송한데 이거 하나 주세요"라고 했다. 돈 내고 사는 건데 뭐가 죄송한가. 더 웃긴 건 문자 메시지다. "죄송한데 내일 회의 몇 시인지 알 수 있을까요?" 상대방이 "왜 죄송해요? ㅋㅋ"라고 답했다. 나도 모르게 "아 죄송해요 ㅋㅋ"라고 보냈다가, 죄송하다고 한 걸 또 죄송하다고 한 내 자신에게 질려버렸다.
회식 자리. 고기를 굽다가 기름이 살짝 튀었다. "어머, 죄송해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정말 죄송해요." 다시 사과했다. 옆자리 동료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만 죄송하다고 열 번은 한 것 같아요." 그날 밤, 집에 와서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사과에 중독됐을까.
아마도 불안 때문인가? 미리 사과하면 상대방이 나를 싫어할 가능성이 줄어들 것 같았다. '예의 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줄 것 같았다. 선제적 방어막 같은 거였다. 하지만 과잉 사과는 오히려 나를 작아 보이게 만들었다. 친구가 말했다. "너는 맨날 미안하다고 해서 오히려 미안하지가 않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진짜 사과가 필요한 순간에도 그 무게가 가벼워진다는 거다.
일주일 실험을 해봤다. '죄송' '미안'을 최대한 안 쓰기. 첫날은 입이 근질근질했다. "죄ㅅ... 아니, 안녕하세요!" 이렇게 말을 바꿨다. 이틀째는 조금 나아졌다. "복사기 좀 쓸게요"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셋째 날, 작은 성취가 있었다. 회의 시간에 "제 의견은요"라고 말했다. "죄송한데 제 생각에는"이 아니라. 그냥 내 의견을 말했다. 하늘이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완전히 고치기는 어렵다. 오늘도 커피숍에서 "죄송한데 아이스 아메리카노요"라고 주문했다. 택시를 탈 때도 그렇다. "죄송한데 ○○로 가주세요." 나는 손님인데. 나참, 이렇게 연습해도 잘 안되다니
"미안하다는 말을 줄이니 어떠세요?" 의사가 물었다. "처음엔 불안했는데, 지금은... 좀 편해요."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건 죄송할 일이 아니죠." 맞다. 나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사람이다. 내가 여기 있는 건 미안한 일이 아니다. 공간을 차지할 권리, 시간을 쓸 권리, 도움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이 글을 읽느라 시간 뺏은 거... 죄송... 아니다. 이것도 사과할 일이 아니다. 당신이 선택해서 읽은 거니까. 나는 오늘도 과잉 사과와 싸운다. 가끔은 지고, 가끔은 이긴다. 그래도 예전보단 나아졌다. "죄송"을 10번에서 5번으로 줄였으니까. 이것도 진전이다. 앞으로는 정말 미안할 때만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진심이 담긴 사과만 하는 사람. 그게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더 정직한 일이니까. 태생적 사과 인간에서 당당한 인간으로. 그 변화는 느리지만, 확실히 일어나고 있다.
"과도한 사과는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이다." - 브레네 브라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