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가벼워지는데, 몸은 무거워지고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한 지 6개월이 넘었다. 불안이 조금씩 잦아들고 마음의 평온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새벽에도 눈을 감으면 잠이 왔다. 분명 나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질수록 몸이 낯설어졌다. 10kg.
체중계의 숫자가 그렇게 말했다. 처음엔 '기계가 고장 났나?' 싶었다. 다시 올라가봤다. 똑같았다. 거울을 봤다. 얼굴이 둥글어졌고, 바지가 끼었다. "살이 좀 붙었네요."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이 칭찬인지 지적인지 모르겠어서 그냥 웃었다. 웃으면서 속으로는 '그래, 나도 알아요'라고 되뇌었다. 마음은 가벼워졌는데, 몸은 무거워졌다 약의 부작용이라는 걸 알고 있다.
"식욕이 좀 늘 수 있어요. 대신 밤에 덜 불안할 거예요." 의사가 처음 약을 처방할 때 했던 말이다. 그 말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불면 대신 식욕이 왔다. 새벽 두 시, 불안 대신 허기가 찾아왔다. 처음엔 괜찮았다. '이 정도면 참을 수 있지.' 하지만 냉장고 문을 여는 횟수가 늘어났고 라면을 끓이는 일이 잦아졌다. 배가 고픈 건지, 습관인 건지 구분이 안 갔다.
어느 날, 1년 전에 샀던 바지를 입어봤다. 허리 단추가 안 잠겼다. 억지로 끼워 넣었더니 살이 접혔다. 거울을 봤다. 예전의 나는 거기 없었다. "나는 나아지고 있는 걸까, 망가지고 있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치유의 부작용이라는 역설. 불안할 땐 몸이 가벼웠다. 밥맛도 없고, 잠도 없었다. 나는 항상 저체중에 머물러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말랐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누가 봐도 지쳐 있었다. 눈빛은 흐렸고, 입꼬리는 내려가 있었다. 사진을 보면 웃고는 있는데, 웃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지금의 나를 탓하면 안 된다는 걸 안다. 이건 망가진 게 아니라 회복의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마음이 편해지니 몸이 긴장을 풀었고 약이 그걸 도왔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거울 앞에서 한숨을 쉰다. 몸이 나를 대신해 고생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변화를 완전히 받아들이기엔 쉽지 않다. 나참, 회복도 이렇게 복잡한 거였구나. 약을 끊지 않기로 했다. 어떤 날은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약을 끊으면, 예전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곧바로 무섭다. 그때의 마음 상태로도 돌아갈까 봐. 다시 새벽에 깨어 천장을 세고, 혼자 방에서 기어 나와 소파에 앉아 아파트 밖을 바라보고, 하루 종일 졸린 상태로 사무실에 있던 예전으로 돌아갈까 봐. 그래서 결국 다시 약을 삼킨다. 물 한 모금과 함께.
누군가는 이걸 '의존'이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유지'라고 부른다. 내가 내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 그게 약이라면, 그건 부끄럽지 않다. 스스로에게 자문자답했다. "살 찌는 거 걱정안 돼?" "걱정이지. 근데 살 빠지려고 불안해지고 싶진 않거든." 내 대답이었다. 몸과 마음이 같은 방향을 향하기까지
요즘은 생각한다. 살이 찐 게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보호막이 생긴 거라고. 몸이 나 대신 버텨준 시간들이 있었던 거라고. 약이 내 몸을 조금 무겁게 만들었지만 그 무게만큼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가끔 옛날 사진을 본다. 날씬했지만 힘들어 보이는 얼굴. 지금은 살이 쪘지만 웃을 때 진짜로 웃는 얼굴. 어느 쪽이 나을까? 답은 정해져 있다.
운동을 시작했다. 살을 빼려는 게 아니라, 몸과 친해지려고. "오늘도 고생했어"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천천히, 조금씩. 나는 여전히 회복 중이다. 그리고 회복에는 언제나 모양이 다 있다. 누군가는 눈물로, 누군가는 약으로, 나는 10kg으로 회복했다. 에라이, 10kg쯤이야. 마음이 살아있으면 된 거 아닌가.
오늘도 약을 먹는다. 내일도 먹을 거다. 살고 싶으니깐. 그리고 언젠가는 이 무게마저 사랑하게 될 것이다.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무게니까.
"회복이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버전의 자신을 만드는 것이다." - 스티븐 레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