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취미가 7개인 사람의 외로움

불안이 만든 욕심

by 라디

나는 욕심쟁이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다. 정치인, 대통령, 환경미화원, 요구르트 배달원, 쿠팡기사, 해외 바이어, 양궁선수.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보니, 정작 뭘 하고 있는지도 가끔 헷갈린다.


나는 취미부자이기도 하다.

기타 7년 차. 대학교 밴드부에서 시작해 직장인 밴드까지 했다. 연극은 세 번, 한 번은 주인공도 맡았다. 다들 "생각보다 잘한다"며 놀랐다. 미술학원도 1년 반 다녔다. 수채화에 꽂혀서 물감 냄새에 취한 적도 있다. 러닝, 비올라, 베이스, 바이올린. 한 달 하고 끝낸 것들은 셀 수도 없다. 서예, 캘리그라피, 노래. 시작은 화려했지만 끝은 흐지부지였던 것들의 목록이 길다.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혹시 대치동 사교육 받았어요?" 아니요, 그냥 불안이 많을 뿐이에요. 사실 나는 어릴 땐 욕심이 별로 없었다. 공부 말고는 관심이 없었다. '좋은 대학 못 가면 인생 망한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던 청소년기였다. 학교와 학원과 집. 그 삼각형 안에서만 살았다. 그러다 대학교에 들어와 세상엔 정말 다양한 직업과 삶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내가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때부터였다. 뭐든 해보고 싶어졌다. 세상에는 이렇게나 많은 길이 있는데, 나는 왜 하나만 택해야 할까 싶었다.


대학 축제 때 본 밴드가 멋있어서 기타를 샀다. 연극 동아리 공연을 보고 감동해서 오디션을 봤다. 캠퍼스를 뛰어다니는 러닝 크루가 부러워서 러닝화를 질렀다. 하나를 시작하면 또 다른 게 눈에 들어왔다. '이것도 해보면 재밌겠는데.' 그렇게 나는 점점 욕심쟁이가 되어갔다.


"선생님, 저 혹시 이것도 불안장애의 일부인가요?" 진료실에서 내 취미 목록을 이야기하다가 물었다. "그럴 수도 있죠." 정신과 의사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잠시 멍해졌다. "선생님, 그건 너무 슬픈데요. 이건 제 열정이라 생각했는대요."


나는 6개월째 불안장애 치료를 받고 있다. 30년 넘게 불안 속에서 살아왔는데, 금세 바뀌겠나. 그렇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 인생 전체가 부정당하는 기분이 든다. 내가 뭔가를 열심히 하는 이유가 단지 불안 때문이라니. 기타를 치는 것도, 연극 무대에 서는 것도, 새벽에 러닝화 끈을 묶는 것도 - 전부 불안이 시킨 일이었을까?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서운하다.


나참, 내 열정조차 의심해야 하나. "정확히 말하면, 관계중독도 조금 있으신 것 같아요." 의사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축하합니다. 새로운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 관계중독자.' 게임에서 칭호를 얻는 기분이었다. 다음은 뭐지? 완벽주의자? 자기검열 마스터?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관계중독자 치고 나는 외롭다. 결혼식 때 하객 알바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초대할 사람이 많지 않았다. 친구들 명단을 적다가 지우고 지우다가 적고. 결국 가족 위주로 소박하게 치렀다. 관계를 맺을 땐 그렇게나 잘 지낸다. 사람들은 나를 "친화력 좋다", "사교적이다"라고 한다. 그런데 그 관계가 끊어지면 다시 이어가기 힘들다. 누군가 나를 먼저 찾지 않으면 나는 그저 기억 속의 사람으로 남는다.


연락처엔 이름이 수백 개지만, 막상 힘들 때 전화할 사람은 손에 꼽는다. 그래서 내 주변에는 '한때 가까웠던 사람들'이 참 많다. 밴드 할 때 친했던 형, 연극 동아리 선배, 미술학원 친구.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그 취미를 그만두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관계도 취미처럼 바꾸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여전히 욕심이 많다. 사람 관계에도, 일에도, 나 자신에게도. 이제는 안다. 그 욕심의 바탕엔 불안이 깔려 있다는 걸. '멈추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 '이렇게 해야 사랑받을 것 같은' 불안. '이것도 못하면 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 이라는 불안. 그래서 자꾸 새로운 걸 배우고, 사람을 만나고, 무언가를 시작한다. 멈추는 게 무섭다. 비어있는 시간이 견딜 수 없다.


그런데 말이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려 한다. 이 욕심이 꼭 나쁜 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세상을 향한 호기심, 관계에 대한 갈망, 그 모든 건 내가 여전히 '무언가를 꿈꾼다'는 뜻이니까.

오늘도 유튜브로 새로운 취미를 검색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그래, 이게 나다. 불안하고, 욕심 많고, 그래도 멈추지 않는 사람." 불안은 여전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살아 움직인다. 불안이 아니었다면 평생 교사만 하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강사도 안 했을 것이고, 기타도 안 쳤을 것이고, 무대에도 안 섰을 것이다.


나는 욕심쟁이다 하지만 이제 이 말이 싫지 않다. 불안이 만든 욕심이라 해도 그건 나를 세상으로 끌어올린 힘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 불안이 사라진 뒤에도 나는 여전히 욕심을 낼 것이다. 그건 병이 아니라 나의 방식이니까. 누구나 자기만의 엔진으로 살아간다면 내 엔진은 불안이 섞인 욕심일 것이다. 그게 나다.


오늘도 불안하게, 그러나 멈추지 않게 - 그렇게 살아간다. 에라이, 욕심쟁이면 어때. 살아있으니까.



"열정과 불안의 경계는 생각보다 가깝다. 중요한 건 그것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느냐다." - 로버트 프리츠

keyword
월, 화,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