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출근
내가 병원을 처음 찾은 것은 1년 전이었다.
어느 날,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바닥으로 꺼졌다. '기분이 우울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진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이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울이 의지만으로 버티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산책하면 괜찮아져." "마음 단단히 먹으면 돼." "기분 전환 좀 해봐."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 그건 그 감정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의 말이었다.
나의 증상은 이랬다. 잠은 미친 듯이 쏟아졌다. 사무실에서는 단 1분도 집중할 수 없었다. 주말에는 20시간 넘게 잔 적도 있었다. 깨어나도 일어나지 못했다. 침대가 나를 붙잡는 게 아니라, 내 몸 자체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먹을 수 있는 건 자극적인 콜라 정도였다. 밥은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삼키는 게 힘들었다. '하루 이틀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그런 희망조차 없었다. 처음 겪는 종류의 무기력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같았다.
그런데도 아침이면 씻고 출근은 했다. 왜였을까. 죽고 싶을 만큼 힘든데 왜 나는 아침마다 일어나 옷을 입고 현관문을 나섰을까. 출근까지 포기해 버리면 가족들이 금방 눈치챌 것이고 걱정하는 그들의 시선이 직장까지 번지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나는 죽기 직전에도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자존감이 바닥난 사람이었다. 군대 시절 출입문에 붙어 있던 안내문이 떠올랐다. '자살 징후: 수염을 기르고, 용모가 흐트러지고, 무기력해지고, 갑자기 주변에 물건을 나눠주거나 덧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
'저런 사람… 절대 저렇게 티 나고 싶지 않다.' 나는 누가 나를 알아채는 게 싫었다. 그냥 내 방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싶었다. 소멸하고 싶었다.
아침마다 생각했다. "누가 나를 좀 안 죽여주나?" "지금 차에 치이면 끝날까?" 끔찍하고 충격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그게 그때의 나였다.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사람의 생각은 때때로 이렇게 파괴적이다. 나는 나를 직접 죽일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 대신 죽여주길 바랐다. 사고처럼, 우연처럼. 그럼 내 탓이 아니니까. 주변 사람들도 덜 슬플 테니까. 나참, 이런 생각까지 하다니.
그러다 어느 날,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하루 종일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10분 정도 '살고 싶다'는 마음이 슬그머니 올라왔다. 정말 10분. 길어야 15분. 나는 그 10분을 붙잡았다.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정신과를 검색했다. 손이 떨렸다. '이거 예약하면 진짜 정신병자 되는 거 아냐?'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예약 버튼을 눌렀다. 그 10분이 지나자 다시 무기력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예약은 해놨다.
병원 약은 바로 효과가 없었다. "2~3주는 지나야 약효가 나타나요." 의사의 말에 절망했다. '그 3주 동안 내가 버틸 수 있을까?' 매일이 1년 같은데 3주를. '살아있다면 그건 제2의 인생이겠지.'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살아보자. 일단 3주만.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분명히 내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불안장애와 함께 출근했다. 불안과 우울감, 상실감을 안고 하루하루 책상 앞에 앉았다. 누군가에겐 아무렇지 않은 평일이 나에겐 전쟁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래도 버텼다. 출근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대단했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렇다.
약을 먹고 2주 정도 지나자 조금씩 변화가 느껴졌다. 콜라밖에 먹지 못하던 내가 어느 날은 초코 과자를 먹었다. 그다음엔 과일도 먹게 됐다. 사과 한 조각을 씹는데 눈물이 났다. '나 살아가고 있네.' '살아진다'는 표현이 더 맞는지도 모르겠다. 살아가는 건지, 단지 생명이 연장되는 건지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더 이상 차에 치이고 싶지 않다는 것. 조용히 소멸하고 싶지 않다는 것. 그래도 오늘, 나는 살아 있고, 불안과 함께 일을 하고, 불안과 함께 출근을 한다. 완벽하게 괜찮아진 건 아니다. 여전히 아침은 무겁고, 가끔은 콜라만 마시는 날도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끝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불안하지만 출근은 한다. 우울하지만 책상에는 앉는다. 힘들지만 하루는 버틴다. 에라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오늘도 불안과 함께 출근한다.
"절망의 한가운데서도 희망을 찾는 것, 그것이 인간이다." - 알베르 카뮈